아주 예전에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었죠. 작고하신 구봉서, 배삼룡 두 분이 콤비로 나왔던 '양반 인사법'이라는 콩트가 최고 인기였답니다. 상놈(바람직한 표현은 아닙니다만, 당시 프로그램에 나왔던 용어라서 그대로 사용합니다)끼리 서로 양반이라고 속이며 혼인을 맺기 위해 벌이는 소동이 콩트의 줄거리였습니다. 어떻게 서로를 훌륭한 가문인 것처럼 속일 것이냐가 웃음의 소재였죠.
'족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문의 유래와 형성을 기록하는 사적인 기록물. 하지만, 지금은 찾아보기도 쉽지 않고 관심도 크게 두지 않는 듯한, 그래서 존재가치가 거의 사라져 버린 먼지 쌓인 유물처럼 느껴집니다.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뿌리 공원'이라는 곳에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갔던 적이 있습니다. 성씨별 조형물이 있고, 각 조형물에는 이름의 유래가 기록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족보'의 국가적 기록 프로젝트가 구현된 공원이었을 것입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남양 홍 씨'의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유래를 읽어 주었더랬습니다. 우리 집안이 이래 봬도~라는 기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이가 궁금해했었나? 역시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단군신화'에서 개별 가문의 '족보'까지, 기록하고 전승하려는 욕망은 자연스럽게 '역사'로 이어집니다. 결국 '기원'을 알고 싶은 욕망은 '기억되고 싶은' 욕망과 같은 것일까요?
'기원'이라는 것은 재미있거나 극적일 때 혹은 의미 있는 내용일 때 더 잘 회자되고 기억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숨기기도' 하고, 과장해서 '확대하기도' 하며, 왜곡과 거짓말도 보태집니다. 의도를 갖고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고, 구전되다 보니 윤색되거나 변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알리스와 잭 트라우트가 소비자의 머릿속을 점령하려는 전투를 '포지셔닝'이라는 용어로 정리한 이래 '기억'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브랜드에게 잊혀지는 것은 곧 선택지에서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브랜딩'을 잘하려는 여러 수단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스토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략>과 관련한 스토리들이 있죠. - 노드스트롬 백화점은 진짜 판매한 적도 없었던 타이어를 환불해 주었는가? - '2등이어서 더 열심히 일합니다'라고 광고했던 에이비스는 왜 그런 광고를 했는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활용은 브랜드의 <기원>과 <유래>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 플레이보이의 토끼는 왜 턱시도를 입고 있는가? - 영국의 '이노센트 드링크'는 동전 던지기로 창업되었다는데 사실인가?
그런가 하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 거리들도 있습니다. - 형제였던 형 루돌프(루디)와 동생 아돌프(아디)는 왜 갈라섰고 각각 '푸마'와 '아디다스'를 따로 차렸나? 나치 친위대로 활동했던 형을 동생이 밀고했기 때문이라는데 정말 그런가? - 1991년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LA폭동에서 유독 맥도널드만 불타지 않고 멀쩡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 소개할 두 책은 모두 그런 질문으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폭스바겐은 왜 고장 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 <미쉐린 타이어는 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겼을까?>
모두 '자일스 루리'라는 영국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 [밸류 엔지니어스]의 대표가 쓴 책입니다. 각각 2013년과 2017년에 썼고, 한국에는 2014년과 2019년에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칭찬할 점 중 하나는, 단순히 문헌과 기록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도 진행하고, 편지를 보내는 등의 최선의 자료 수집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저자로서 성실하게 가능한 확인은 모두 하려고 했던 노력이 돋보입니다.
또 다양한 브랜드와 관련된 스토리를 매우 방대하게 수집하고 이를 다시 카테고리별로 구분해서 정리해 준다는 점도 독자를 고려한 친절함으로 칭찬할 만한 점 같습니다. (강의하시는 분들께는 많은 강의 소재를 제공합니다. 거의 뭐 사례집이죠.)
* 폭스바겐은 왜 고장 난 자동차를 광고했을까(2013) - 총 스토리 수 : 60 개 - 구분 : [브랜드] [혁신] [아이디어] [실행] [리더] * 미쉐린 타이어는 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겼을까(2017) - 총 스토리 수 : 106개 - 구분 :[브랜딩] [기원] [네이밍과 아이덴티티] [마케팅 전략] [커뮤니케이션] [혁신] [리포지셔닝과 리부팅]
다만, 아쉬운 점으로 물리적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한된 지면에 많은 얘기를 담다 보니, HBR이나 DBR의 사례 연구처럼 깊이 있는 내용을 기대할 수는 없네요. 그래서 책의 부제가 "경영자들이 읽는 이솝우화"라고 붙여진 듯합니다.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내용은 따로 다시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 좀 아쉽습니다.
아쉬운 점 한 가지가 더 있는데요, 한국 기업과 브랜드의 사례는 딱 하나만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LG의 사례). 아시아권으로 넓혀도 혼다, 헬로키티, 워크맨 이렇게 일본의 3가지 사례만 소개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서구권의 사례입니다. 브랜드나 마케팅은 여전히 지독한 서구적 관점에서 하나도 발전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그래도 일독할 만한 가치는 있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그거 아세요? 오늘 소개한 책처럼 내용이 짧게 짧게 마무리되는 책들은, 버스나 KTX 같은 이동 수단에서 읽기에 최적이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