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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an 09. 2023

[영화결산] 2022년 영화 BEST TOP 11~20


2022년이 지나고 2023년이 되었습니다. 2022년에 꾸준함과 성실함을 실천하려고 했는데, 한 해를 돌아보니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인간실격이네요. 2023년도 꾸준함과 성실함을 다짐하며 영화를 보고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에 총 115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여러모로 풍요롭고 ‘영화’로운 한 해였습니다.


좋은 영화가 많았던 만큼 10편으로 부족하여 이번에는 2022년 영화 BEST TOP 20을 선정했습니다.


2021년 12월 말부터 2022년 12월 말까지 영화관에서 개봉하거나 OTT에서 공개된 영화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재개봉한 영화나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제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들어 기획전으로 본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이나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같은 영화들)


TOP 20 전부를 한 포스팅에 적을 수 없어 10편씩 나누어서 소개합니다. 이번 포스팅에는 역순으로 TOP 11~20위까지 소개해 드립니다. 순위 선정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간단한 단평도 남깁니다.


20위. <프로메어>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의 <프로메어>를 처음 본 것은 19년도 영화제였습니다. 그때 처음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 정말 이 감독 끝까지 가는구나. 애니메이션 <천원돌파 그렌라간>과 <킬라킬>을 넘어서 <프로메어>에 이르기까지, 히로유키 감독의 개성은 점점 독창적으로 강해졌습니다. 소년만화의 열혈도 철철 넘치는 동시에 형광색으로 표현한 색채감까지 뛰어난 <프로메어>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를 잘 실천한 영화입니다. 보는 내내 입을 벌리며 보게 되는 액션과 사회적 의미가 담긴 스토리까지 뛰어납니다. 보고 나면 가슴이 끓어오르는데, 이마이시 히로유키 감독의 다음 작품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인 것을 생각하면 이 감독의 다음 작품은 얼마나 훌륭할지 가늠이 잘되지 않습니다. <프로메어>와 더불어서 <서이버펑크: 엣지러너>도 추천드립니다.


19위.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1년 사이에 2편의 영화를 공개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와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이죠. 두 작품 모두 동화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같은 감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동화의 구조를 가져오되, 꿈도 희망도 없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는 전쟁이란 잔혹한 현실 속에서도 동화의 구조를 가져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두 작품 모두 훌륭하지만 저는 피노키오에게 조금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영화는 동화의 질감이 풍부하고 근래에 보기 드문 작법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속에 여진을 남깁니다.


18위.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3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연히 틈입하는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여 상상으로 그려냅니다. 그렇게 사랑과 아이러니, 치유를 마법처럼 이야기합니다. 예술에서 우연성은 필연처럼 느껴진다는 점에서 미학적으로도 흥미롭고, 그것을 상상으로 펼쳐낸다는 점에서 즐거움의 원천에 관한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삶 속에서 우연이란 마법은 늘 침투하고, 그것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즐거움의 노예라는 것을 절절히 느낍니다.


17위. <실종> (가타야마 신조 감독)


가타야마 신조 감독의 영화 <실종>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인물들의 손짓이 잔상으로 아른거릴 정도죠.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던 아빠 '사토시'가 실종되면서 달려나가는 이 영화는 변곡점을 지나면 강렬한 엔딩으로 치닫습니다.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분노와 동시에 짙은 서글픔이라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흡사 망치로 탁구를 하는 듯한 이 영화는 땀이 날 것만 같은 표현법이 탄탄한 각본 아래 탁월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다는 점에서 장도리 같기도 합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번번이 실수하고 착각하며 아무것도 모릅니다.


16위. <로스트 도터> (매기 질렌할 감독)


매기 질렌할 감독의 <로스트 도터>는 엘레나 페란테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한국에서는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모성의 신화를 정반대로 뒤집은 것만 같은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던 모성의 허상을 과감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퀴퀴한 욕망과 감정을 응시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과일과 껍질, 그리고 인형 같은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연출도 훌륭합니다. 올리비아 콜먼과 다코다 존슨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제시 버클리의 연기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과연 모성이란 존재하는 것인지 거대한 상념에 휩싸이게 됩니다.


15위. <나의 집은 어디인가> (요나스 포하르 라무르센 감독)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영화이지만 삶의 무게가 놀랍도록 체험되는 영화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러시아를 거쳐 덴마크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난민 생활을 담아낸 이 영화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절절하게 체험한다는 점에서 놀랍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영화가 삶의 거친 풍랑을 잠재우고 안식과 고요를 선사하면서 이토록 고통스럽게 무거운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냅니다. 결국 좋은 영화의 기준 중 하나가 '체험'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상기합니다.


14위. <탑> (홍상수 감독)


올해도 홍상수 감독은 2편의 영화를 공개했습니다. <소설가의 영화>와 <탑>이었죠. <소설가의 영화>도 좋았지만 저는 <탑>이 무척 좋았습니다. '탑'이라는 구조와 한 인물의 심상이 놀랍게 맞닿는 이 영화는 미학적으로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짙은 슬픔이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 <탑>은 상상과 현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흡사 지우개로 뭉갠 것처럼 흐릿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야기의 구조를 병렬식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액자식으로 배치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인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혹은 홍상수 감독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인식론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건물의 층마다 이야기를 부여하며 예술의 방법론까지 코멘트하는 영화 <탑>은 거대한 이야기이자 영화이고, 그 자체로 생각의 건물이자 슬픔의 반추입니다.

13위. <본즈 앤 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현재 가장 인기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화제를 몰고 다니는 티모시 샬라메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다음으로 다시 한번 뭉쳤습니다. 영화 <본즈 앤 올>은 식인을 해야 하는 '이터'라는 존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친구의 손가락을 먹는 장면으로 선전포고하듯이 시작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 매런의 사랑과 성장을 가냘프고 서정적으로, 한편으로 뒤틀리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한 소녀와 소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설리라는 뒤틀린 욕망을 가진 존재를 통해 영화는 사랑을 입체적이고 다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저는 훌륭한 로맨스 영화는 '사랑한다'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로맨스는 끝나버립니다. 훌륭한 로맨스 영화는 '사랑'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날 사랑한다면 나의 뼈까지 먹어줘. <본즈 앤 올>은 이토록 잔인한 사랑의 언어를 창조합니다. 흡사 그들의 사랑을 언어와 앵글 속에 봉합이라도 하려고 하는 듯이 말이죠.


12위. <견왕: 이누오>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견왕: 이누오>는 일본의 전통 극음악 '노'를 가져와 락으로 흥미롭게 변주합니다. 록 음악이 가지는 강렬한 에너지가 똘똘 뭉친 이 영화는 힘찬 캐릭터의 움직임과 독창적인 카메라의 앵글로 관객을 어깨와 발을 흔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시대극에도 불구하고 <견왕: 이누오>는 흡사 퀸 이나 데이비드 보위의 락 오페라를 눈앞에서 보는 것만 같은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예술가의 삶과 태도를 묻는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잊힌 작은 예술가를 불러내어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부여하여 위로의 손길을 건넵니다. 결국 예술이란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삶의 태도입니다. 덧없다고 느껴질지라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불꽃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11위. <컴온 컴온> (마이크 밀스 감독)


마이크 밀스 감독의 영화 <컴온 컴온>은 사회 르포 다큐멘터리같이 시작하지만 주인공 '조니'가 조카 '제시'를 돌보면서 가족 영화처럼 변모하고 우리에게 깊은 풍경을 선사합니다. 흑백 영화이지만 이 영화가 남긴 풍경들은 명료하며 맑습니다. 흡사 성선설을 믿는 듯한 이 영화는 조니가 어머니, 인터뷰이(Interviewee), 아이로 세 번의 역할을 살아보며 우리에게 질문을 남깁니다. 이 세상에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어떡해야 할까요? 그 질문의 답은 아이들과의 인터뷰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영화는 가족사진 같은 프레임 속에 조니와 제시의 모습을 담습니다. 저 또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이처럼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영화 BEST TOP 1~10위도 빠른 시일 내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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