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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an 13. 2023

[영화결산] 2022년 영화 BEST TOP 1~10

2022년이 지나고 2023년이 되었습니다. 2022년에 꾸준함과 성실함을 실천하려고 했는데, 한 해를 돌아보니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인간실격이네요. 2023년도 꾸준함과 성실함을 다짐하며 영화를 보고 기록하도록 하겠습니다.


2022년에 총 115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좋은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어 여러모로 풍요롭고 ‘영화’로운 한 해였습니다.


좋은 영화가 많았던 만큼 10편으로 부족하여 이번에는 2022년 영화 BEST TOP 20을 선정했습니다.


2021년 12월 말부터 2022년 12월 말까지 영화관에서 개봉하거나 OTT에서 공개된 영화들을 선정하였습니다. 재개봉한 영화나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은 제외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들어 기획전으로 본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이나 이번에 한국에서 새로 개봉한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같은 영화들)


TOP 20 전부를 한 포스팅에 적을 수 없어 10편씩 나누어서 소개합니다. 지난 포스팅에 이어서 이번에는 역순으로 TOP 1~10위를 소개해 드립니다. 순위 선정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간단한 단평도 남깁니다.


10위.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영화상을 받아 뚜렷한 성취를 이룬 작품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가후쿠는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지만,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그 이유를 묻지 못합니다. 그리고 2년 후 가후쿠는 체홉의 연극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전속 드라이버 미사키를 만납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시나리오로 질문하고 풍경과 인물들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똑바로 진실을 마주 보고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위안을 넌지시 건넵니다. 삶의 끝에서 바라본 풍경의 집합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간절하고 위태롭지만 미약하게 조금씩 나아갑니다. 전체가 하나의 시(詩) 같으며 대사 하나하나가 운율로 경험되는 놀라운 영화입니다.


9위. <매스> (프란 크랜즈 감독)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두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영화 <매스>는 누군가가 한숨을 내쉬면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가 치는 것 같아 감정을 온통 헤집어 놓습니다. 제목이 'Mass'인데 그 뜻이 종교 의식 '미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극 중 장소가 교회인 것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Mass'가 덩어리로 해석됩니다. '증오'라는 씨실과 '분노'라는 날실로 뭉친 덩어리(Mass)를 '용서'와 '포옹'으로 풀어내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의 해일이 어마어마합니다. 카메라가 각각의 인물을 잡으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벗어나 버리곤 하는데, 그 순간이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8위. <어나더 라운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덴마크의 영화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어나더 라운드>는 삶의 의욕을 읽은 교사 마틴이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라는 가설을 실천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이토록 즐거운 축제 같다가도, 이토록 슬픈 장례식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감독이 먼저 세상을 떠난 딸을 향한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짙은 애잔함도 드러납니다. 영화는 삶에 관한 낭만성과 낙관성, 그리고 절망성과 비관성을 함께 다루어 내면서 새로운 성찰을 제시하곤 합니다. 결국 삶은 어제 한 일을 오늘도 하는 것이고, 오늘 한 일을 내일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약간의 술은 도움이 됩니다.


7위.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1차 세계대전을 다룬 동명의 반전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독일군이 참호전을 벌이면서 겪는 사투와 스테이크를 먹는 윗분들의 대비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오락의 전쟁 영화가 아닌, 체험과 고통의 전쟁 영화라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어찌 보면 전쟁 영화도 오락 영화의 하위 장르로 볼 수 있을 텐데,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쾌감과 희열보다 전쟁이 주는 고통과 절망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삽자루로 들고 싸우는 참호전, 화염방사기, 사람을 짓밟는 탱크, 독가스로 허무하게 죽어간 병사들까지, 전쟁의 모습을 굉장히 생생하고 처절하게 묘사하여 왜 1차 세계대전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입안에 진흙이 가득하고, 온몸이 불타며, 목에 칼로 찌른 구멍이 생기는 것만 같습니다.


6위. <스펜서> (파블로 라라인 감독)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영국 왕실에 있을 때 열린 1991년 크리스마스 연휴 3일간을 다룬 영화 <스펜서>는 무엇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어쩌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대적할 동년배 배우는 없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크리스틴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말투뿐만 아니라 발걸음과 손짓까지 묘사하여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혼자 춤을 추거나 뛰는 장면은 감정의 파동을 만들어 내는 훌륭한 연기입니다. 영화 <스펜서>는 크리스틴의 연기뿐만 아니라 연출도 굉장히 좋습니다. 특히 상징과 비유를 탁월하게 활용하여 이야기 전체의 폭과 깊이를 한층 풍부하게 합니다. 다 보고 나면 왜 영화의 제목이 '다이애나'가 아니라 '스펜서'인지 깨닫게 하며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5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어트 감독)


다니엘스 듀오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라 해도 손색없습니다. 무엇보다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다중우주라는 소재를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영화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상상력 넘치는 표현 방식이 성장담과 허무주의라는 철학적 논제에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와서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이 남편의 이혼 요구와 엇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현재 삶을 부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멀티버스에서 목격한 또 다른 '에블린'은 굉장히 잘나가는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멀티버스를 탐험하며 마주하는 '한 줌의 시간'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결국 모순과 혼란이 가득한 이 세상과 싸우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우리 눈앞에 있는 소중한 '한 줌의 시간'에 따듯한 포옹을 건네는 겁니다.


4위. <더 배트맨> (맷 리브스 감독)


영화 <더 배트맨>에서 배트맨의 자동차 배트카를 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배트카가 등장하고 웅장한 배기음이 들리는 순간, 영화관 전체가 진동하였습니다. 엄청난 긴장감에 다리까지 떨리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브루스 웨인의 배트맨 초창기를 다룬 영화 <더 배트맨>은 2시간 55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영화의 장력으로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특히 어둠 속에서 불빛을 활용한 시각적 연출로 고전적인 품격마저 느껴지곤 합니다. 4명의 고아를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 끝에서 악의 정의는 무엇인지 묻습니다. 인간은 필시 죄를 짓고 벌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정의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자신이 믿는 진실에는 반드시 거짓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트맨은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구할까요.


3위. <애프터 양> (코고나다 감독)


시리즈 <파친코>를 연출하여 유명해진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은 인물들이 춤을 추는 독특한 인트로가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주인공 제이크는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수리하기 위해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SF적 상상력을 훌륭하게 표현한 시각효과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기억을 탐험하는 과정을 묘사한 시각효과가 인상적인데, 이를 통해 인지와 기억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대단합니다. 파편적인 기억의 편린을 재조립하여 한 존재의 삶을 절절하게 체험하는 경이로운 영화입니다. 풍경, 냄새, 노래, 사랑, 그리고 그곳에 깃드는 기억들 틈에서 삶의 뿌리를 탐구하여 우리에게 존재의 숭고함을 묻습니다.


2위.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프랑스 영화 <풀타임>은 파리 교외에서 홀로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쥘리'의 삶을 담아낸 영화입니다. 그녀는 호텔 룸메이드로 일하며 숨 가쁘게 두 아이를 키우고 있죠. 이 영화는 스릴러 작법을 가져와 쥘리의 하루를 긴장감 있게 묘사하는데, 이것이 단순히 재미의 측면에서 활용된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의 연출은 쥘리의 호흡과 마음에 맞닿아 있습니다. 카메라가 인물의 심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어 덩달아 우리의 마음마저 초조하게 합니다. 영화가 주는 압박감이 대단하여 관객의 공기마저 무겁게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고단함, 프랑스의 사회 문제, 모성, 숨겨진 인물의 욕망까지 촘촘하게 묘사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이르면 관객은 기쁨과 탄식을 동시에 마주합니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묵묵하게 바라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1위.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예술의 품격이 무엇인지 깨닫게 합니다. 영화에서 고전적인 품격이 드러나며 고아함과 지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앵글과 프레임, 탁월하게 변주하며 조응하는 대사들과 상황까지, <헤어질 결심>은 2022년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뛰어난 성취입니다. 사랑의 이미지를 우아하게 담아내면서, 반대에서 시체와 벌레를 통해 강력한 전율을 전달합니다. 어쩌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지로 드러나는 양면성과 이중성이 영화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사랑의 성질까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왜 영화여야 하는지' 증명합니다. 결국 영화의 제목 <헤어질 결심>이라는 것이 행동의 의지이며, '서래'가 '해준'을 위해 미결 사건을 만든다는 점에서 한껏 우아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영화가 끝나고 대사들이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그렇게 나쁩니까. 저는 당신을 위해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했습니다. 당신 마음속에 영원한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헤어져야 하지만 끝내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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