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순범 Jan 04. 2023

<더 퍼스트 슬램덩크>, 마음의 드리블

<슬램덩크>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

저 어릴 적에는 동네마다 '영화마을'이라는 DVD 대여점이 있었습니다. 간판에 부엉이 캐릭터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죠. 제 동네 대여점은 참 좋았던 게 비디오, DVD뿐만 아니라 수많은 만화책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영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만화책을 탐닉하곤 했었죠. <기생수>를 보며 감탄하기도 했고, 야구만화 <메이저>와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보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우곤 했죠.


그리고 본 만화가 바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였습니다. 저는 <슬램덩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이런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만화가 존재한단 말이야?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 만화 <슬램덩크>의 극장판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습니다. 원작자가 각본과 감독까지 함께 만든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진정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더욱 설레었습니다. 바로 조조영화로 보고 왔습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이름보다 '강백호'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한 저는 더빙을 선택했습니다.(자막으로 봐도 이름이 강백호로 표기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더빙도 훌륭하며 현지화가 잘 적용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재밌습니다. 농구 본연의 재미가 잘 살아있습니다. 기존의 셀 애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카툰 렌더링 기법을 도입했는데 크게 이물감 없이 영화에 녹아들며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앵글이 빠르게 이동하며 속도감을 나타내고 박진감 있는 연출을 통해 육탄감이 느껴집니다. 농구는 종목 특성상 몸과 몸이 많이 부딪히는 스포츠인데, 영화를 보고 있는 내내 경기장에 실제로 서있고 선수들과 부대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땀의 표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보고 있으며 제가 직접 땀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표현감이 살아있습니다. 후반부의 농구 장면은 주먹 꽉 쥐고 볼 만큼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농구 장면만으로 재미있게 볼만합니다.




소리를 활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보통 스포츠 영화라면 사운드를 꽉 채워서 현장감을 주고자 했을 텐데, 이 영화는 소리를 점점 소거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것은 경기의 긴장감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탁월하게 전달합니다. 어디서 소리를 더하고, 어디서 소리를 뺄지 잘 선택합니다.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가장 놀라운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슬램덩크>의 이야기는 발라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강백호와 서태웅의 영화가 아니라 '송태섭'의 영화라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기존 만화에서 보지 못했던 송태섭의 이야기를 과거를 풀어나가면서, 만화에서 최대 이벤트였던 산왕전을 결합하여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원작의 후광을 업고 가지 않겠다는 선전포고 같은 영화의 이야기는, 마지막에 다다르면 단순히 스포츠 영화를 넘어 힐링시네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떠나간 자의 마음과 남아있는 자의 마음이 농구공의 드리블에서 공명합니다.




하지만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기존 만화 팬들의 욕구도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낭만 가득한 명대사들(왼손은 거들 뿐,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과 명장면들(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도 영화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송태섭의 이야기와 우리가 보고 싶은 만화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영화는 에너지가 넘치는데 여러 방향으로 산발하며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산고의 인물들뿐만 아니라 산왕공고의 인물들도 터치하며 넘어가는데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만화에서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보여줘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는 송태섭의 이야기와 감정을 흩트리기도 합니다. 때문에 이야기의 개성이 도식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만화의 명장면들을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영화관에서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간단한 쿠키 영상도 있으니 챙겨보고 가시면 좋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베르히만 아일랜드>, 삶과 영화의 접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