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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Dec 23. 2022

<베르히만 아일랜드>, 삶과 영화의 접합

삶과 예술의 사이를 넘실넘실 넘나들며.


미아 한센 러브 감독의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을 중심으로 현실의 축과 예술의 축 사이를 넘실넘실 넘나드는 영화이다.('잉마르 베리만'이 맞는 표기이나 영화에서 '베르히만'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베르히만'으로 통칭한다.) 잉마르 베르히만은 자신의 어둠을 탐구하고 영화에서 토론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에는 슬픔이 저변에 깔려 있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그의 영화에서 인간의 어둠과 슬픔을 근력으로 끌어올리고, 주인공 '크리스'의 상상을 동력으로 삼아 노를 젓는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크리스'와 '토니'는 창작을 위해 잉마르 베르히만이 살았던 스웨덴의 '포뢰'라는 섬을 찾는다. 이곳에서 그들은 베르히만의 삶을 느끼며 창작을 이어나간다. 유명한 영화감독인 토니는 막힘없이 창작을 이어나가는 반면 크리스는 창작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크리스는 청년 '요나스'와 섬 곳곳을 누비며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을 만들기 위해 토니에게 풀어놓는다.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장소 자체 분위기에 심취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사실상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섬이지만, 베르히만이 이곳에서 영화를 찍고 삶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정서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 분위기는 영화 자체의 동력이다. 영화 역사에 그토록 큰 발자국을 남긴 자가 작은 섬, 작은 교회, 작은 무덤에 잠든 풍경은 삶의 허무에 대한 깊은 생각을 건넨다.



베르히만의 삶과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창작자의 삶과 영화가 변하는 과정이 신비롭게 묘사된다. 또한 창작의 원동력에 대한 과정도 흥미롭다. 토니가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중간 크리스는 요나스와 함께 섬 곳곳을 누빈다. 때문에 토니는 다른 관광객과 함께 버스 투어를 하고 크리스는 요나스와 함께 차량 투어를 한다. 버스 투어는 체계적이다. 차량 투어는 즉흥적이다. 이 두 개의 투어는 흥미로운 착점에서 대비된다. 버스 투어는 영화 제작처럼 묘사된다. 영화 제작은 체계적으로 정해진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 차량 투어는 제작 이전에 아이디어 원천을 탐험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즉흥적이며 삶의 풍경 순간순간을 즐긴다. 자유롭게 바다를 누비는 것과 투어로 정보를 탐색하는 것, 양가죽과 양고기 버거도 이런 대비에 해당한다. 이 대비는 영화의 시간 속에서 신비롭고 유려하게 흘러간다. 나중에 집에서 토니와 크리스는 만나게 되는데, 결국 삶과 창작은 멀다가도 한없이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크리스는 자신의 작업실 시계의 건전지를 뺀다. 중요한 것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정지된 순간에 느끼는 경험이라는 깨달음과 연관된 행동이다.



토니의 "두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순환"이라는 말은 토니와 크리스에게 해당되는 말이면서 크리스가 만드는 '가끔 찬란한, 행복한 사랑의 마지막 장 이야기'에도 해당한다. 크리스는 때늦은 사랑의 이야기이자, 행복한 순간이 있기에 계속 사랑하는 이야기를 토니에게 풀어 놓는다. 곳곳에 녹아있는 베르히만의 풍경들 속에서 어쩌면 사랑이 복구되길 바라는 이야기이다. 크리스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마무리는 자전거를 타며, 갈림길을 나서며, 베르히만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영화를 마주 보는 순간 찾는다.

이야기의 마무리를 만드는 것이 아닌 찾는다는 점에서 굉장히 신비롭게 느껴진다.
삶과 영화가 신비하게 접합하는 순간 이야기의 결말은 비로소 드러난다. 크리스가 딸을 끌어앉는 엔딩은 <베르히만 아일랜드>의 엔딩이면서 크리스가 만드는 영화의 엔딩이다. 결국 하나의 엔딩이 두 가지 이야기의 엔딩으로 작용한다.



영화 <베르히만 아일랜드>는 잉마르 베르히만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넘어서 크리스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예술의 신비로운 접합을 발견하고 탐구한다. 결국 현실의 축과 예술의 축은 따로 뻗어 나가는 평행선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 엉키며 나아가는 나선형이다. 그리고 이토록 얽히고설킨 삶과 예술 속에서 창작자들은 이야기의 결말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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