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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Nov 27. 2022

<컴온 컴온>, 기억하고 고쳐나가는 진심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간직한다면.

"뭘 기억하고 뭘 남길까요?"


"어떤 일에 행복한가요?"


영화 <컴온 컴온>은 삶과 미래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질문들이 생각보다 묵직한데 대답하는 대상은 바로 아이들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대답이 심상치 않다. "미국은 비극적으로 사는 나라"라고 말하거나, "나와 다르다고 틀린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답은 의외로 깊은 심상을 남긴다.




사회 르포 같은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하는 영화 <컴온 컴온>은 '조니'가 자신의 여동생 '비브'의 부탁으로 조카 '제시'를 돌보게 되면서 가족 영화로 변모한다. 그리고 조니와 제시가 함께 뉴욕, 뉴올리언스로 움직이면서 로드 무비의 성격도 띠기 시작한다. 조니는 천방지축 조카 제시를 돌보며 세 번의 역할로 다시 살아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이윽고 도달하는 종착지에서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남긴다. 이 세상에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어떡할 것인가?


'어머니'로서 살아보기


조니는 조카 제시의 돌보게 되면서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조니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인용된 책의 말처럼 어머니는 육아와 일을 동시에 병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부성애라기보단 모성애에 가깝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고 부성애와 모성애의 구분이 모호하지만 조니는 여동생 비브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니와 비브의 관계는 끊어져 있었다. 과거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두고 갈등이 존재하였고 둘은 의견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남매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으로 귀결된다. 어머니를 대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고, 그들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틀리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조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비브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째서 비브가 예민하고 짜증을 냈는지 몸소 겪어보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삶을 미약하게나마 겪어보는 것, 그것이 조니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내딛는 첫 번째 걸음이다.




'인터뷰이(Interviewee)'로서 살아보기


조니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 즉 '인터뷰어(Interviewer)'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디트로이트, 뉴욕, 뉴올리언스의 아이들을 인터뷰한다. 다만 제시는 귀찮을 정도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짐으로써 조니의 역할을 바꾼다. 즉 제시랑 있을 때 조니는 '인터뷰이(Interviewee)'가 된다. 영화에서 인용되는 책의 말처럼 인터뷰어는 상황을 피할 수 있지만 인터뷰이는 피할 수 없다. 인터뷰어는 상황을 취재를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인터뷰이는 상황 자체가 삶으로 다가온다. 즉 그들의 삶의 무게를 알기 위해선 그들의 상황을 경험해야 한다.




결국 인터뷰의 본질은 인터뷰이의 진솔한 마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조니와 제시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제시는 조니의 감춰둔 과거를 헤집고 끌어내면서 조니의 과거를 똑바로 마주 보게 한다. 역할극을 함으로써 조니에게 또 다른 상황을 부여하거나 녹음 마이크를 들이밀면서 질문하는 것이 바로 이런 행동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오는 것은 조니의 진솔한 마음들이다. 솔직하게 여동생이 미웠다거나, 전 애인이 떠나갔을 때 드러나는 찌질한 마음들이 그렇다.


'아이'로서 살아보기


조니는 제시를 돌보면서 제시와 가까워지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한다. 같이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레슬링 하기도 하며, 함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처음에 남들과 다른 제시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여동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은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며 동행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조니가 마이크를 쓰는 것처럼 동행하며 일상을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없다. 조니와 제시가 사이좋게 계속 다녀도 한 번씩은 투닥거리는 것처럼 완벽한 타인의 이해는 없다. 그럼에도 서로 대화하는 것을 멈춰 선 안 된다.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타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방법밖에 없다. 제시의 말처럼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 그래도 우린 해야만 한다.(C'mon C'mon) 그리고 노력 끝에 조니와 제시는 함께 성장한다. 결국 성장은 쌍방향이다.


사람의 선함을 믿다


아버지 때문에 상처받은 제시는 숲길을 따라 도망간다. 조니는 그 뒤를 따라가고 제시를 위로한다. 조니는 제시에게 안 괜찮으면 안 괜찮다고 소리쳐도 된다고 한다. 제시는 괜찮다고 말하다가, 이내 안 괜찮음을 인정하고 시원하게 소리를 지른다. (장소가 숲인 것을 생각하면 제시가 초반에 이야기했던 '나무를 연결하는 곰팡이관'이 절로 연결된다.) 카메라는 오솔길의 풍광을 테두리 삼아 그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영화는 이 둘의 모습을 자연의 풍광 또는 문틀로 액자에 넣어 화면에 담는다. 흡사 가족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컴온 컴온>은 단순히 가족영화를 벗어나서 아이들의 인터뷰와 책의 인용구를 끌고 와 영화를 확장해 나간다. 가족의 의미를 담아내는가 싶다가도 미국 사회의 모습을 함의적으로 담아내어 이야기를 풍요롭게 한다.(인터뷰가 연기가 아닌 실제 인터뷰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조니를 통해 과거를, 아이들의 인터뷰로 미래를 매끄럽게 사유하면서 생각의 뭉치가 자연스레 관객에게 도달한다. 또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단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기록이다. 누군가와 함께 경험을 공유하고 느낌을 공감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통해 '평범한 순간들을 영원토록 보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컴온 컴온>은 사람의 선함을 믿는다. 흡사 '성악설'보단 '성선설'을 믿는 듯하다. 영화에 딱히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제시의 아버지는 악인이라기보단 아픈 사람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간다면,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간직한다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조니와 제시가 대화와 기록을 통해 서로를 기억한 것처럼 말이다.) 천국에 갈 때면 잊히겠지만 살아있는 동안 소중한 것을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찬란한 세상은 이어질 것이라는 속삭임이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은 선하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다시 질문을 돌아본다. 이 세상에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지 못했던 일만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그 대답은 아이들의 인터뷰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것들을 영원토록 보관하기.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간직하기.


화내는 것을 고치기.


찾기 위해 찾기.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의외로 세상을 바꾸는데 필요한 것은 이처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를 기억하고 고쳐나가는 진심이 중요할 것이다. <컴온 컴온>이 흑백 영화인 것도 이런 이유이다.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화려한 기술이나 색감이 아니다. 단순하지만 마음 깊이 와닿는 진심이다. 그렇기에 <컴온 컴온>의 진심은 흑백 화면을 통해 명료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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