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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Jun 11. 2023

<그 여름>,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

계절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사랑의 흔적을 보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그 여름>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경과 수이는 열여덟 여름에 처음 만났다.

한지원 감독의 영화 <그 여름>은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단편 소설 <그 여름>이 원작이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한국 애니메이션이면서, 동시에 퀴어 로맨스물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이윽고 네가 된다>처럼 여성 퀴어 로맨스(일명 백합)가 종종 다루어지긴 했으나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그 여름> 같은 작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윽고 네가 된다>는 백합 장르의 정석이라고 해도 좋은 작품이니 추천한다.) 애니메이션 플랫폼 '라프텔'의 기획으로 출발한 작품이 영화까지 온 셈이니 한국 영화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도 볼 수 있다.




영화 <그 여름>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경이가 수이에게.

이 영화는 본래 이야기의 토대는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시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소설은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영화는 '이경'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레이션까지 들어가며 직접적으로 이경의 심리를 드러낸다. 이경은 '수이'가 찬 우연히 축구공에 맞고 그때 사랑은 사고처럼 다가온다. 이경은 수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 생각에 보답하듯, 수이는 딸기우유를 사와 이경에게 건네준다. 그렇게 그 둘은 서로에게 햇살이 된다.




이경과 수이가 처음 만난 열여덟의 '그 여름'은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 둘은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몸을 만지는 촉감을 기억한다. 영화는 그 둘의 사랑을 축복이라도 하듯 수이와 이경이 함께 있는 창고에 햇살을 내리쬐고, 함께 스쿠터를 타고 지나갈 때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적란운으로 가득 채운다. 카메라의 시점은 그들을 전체적으로 잡기보단 한 사람의 시선을 대변하기도 하고, 제비꽃과 플라스틱 컵 같은 작은 것에 기울인다. 이 영화의 전반부에서 카메라는 수이를 몰래 살금살금 보고 있다. 이경이가 수이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힐끔 보는 것과 같다. 이경은 스쿠터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동시에 사이드 미러를 통해 수이를 본다. 무엇보다 소중하기에 아껴보는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는 서로의 눈동자를 통해, 서로의 시선을 포착한다.




이경과 수이가 서울로 올라온 스무 살의 '그 여름'은 칙칙하고 푹푹 찐다. 시골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던 것과 다르게 서울로 올라온 다음 영화의 풍경은 무채색에 가깝다. 푸른 나무 대신 빌딩이 가득하고,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 대신 습도가 가득하여 푹푹 찌고 있다. 이경은 서울의 대학교에서 경제학과를 입학하고, 수이는 무릎을 다쳐 축구를 그만두고 정비사 일을 시작한다. 이경은 '문리버클럽'이라는 레즈비언들이 모이는 바를 통해 세계를 확장하기 시작하지만, 수이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기 바쁘다. 이경은 자신이 확장하는 세상 속에 수이가 함께하길 바라지만, 수이는 그저 둘만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한다. 고등학교 창고에서 단둘만이 껴안은 세상을 계속 지키고 싶어 한다. 그렇게 이경과 수이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수이를 쳐다보던 이경의 시선은 은지로 옮겨간다.



이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욕심쟁이가 싫다.

이경은 영화에서 3번 충돌한다. 먼저 '세상'과 충돌한다. 이경은 수이를 만나고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수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수이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숨겼으면 한다. 타인을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이경은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이경은 머리와 눈의 색이 갈색이다. 자연 갈색이라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의 선생님들은 이경에게 규칙을 어겼다고 검은색으로 머리를 염색할 것을 지시한다. 이경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과 '자연 갈색'이라는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이가 자신과 가까이 있는 모습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 괴로워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이경은 세상과의 충돌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고안한다. 이경은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지만 안쪽 머리는 여전히 갈색으로 놔둔다. 그렇게 안쪽 머리는 갈색으로 남겨두면서 세상과의 충돌에서 저항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한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오고 이경은 '수이'와 충돌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경은 동년배들의 화제에 큰 관심이 없다. 기숙사에서 이루어지는 동기들과의 대화에서도 이경은 그들의 주제가 시시하다고 느끼고 하품까지 한다. 반면 자신의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하려고 한다. 레즈비언 바를 찾아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일하며 연극을 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이는 이경과 같은 여유가 없다. 수이는 늘 하루를 최대치로 사는,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속에서 감내한다. 이경이 "축구가 힘들면 그만두면 되잖아"라고 말하자 수이는 "그게 말이 되니"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수이는 이경과 달리 선택지가 없다. 운동밖에 안한 수이가 무릎을 다친 순간, 그녀는 자신의 살 길을 계속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수이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이경뿐이다. 그래서 수이는 이경에게 단둘이 떠나자고 말하며, 둘만의 세계를 지키고 싶어 한다. 수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이경과 단둘이 있기 위한 '섬'이다. 그래서 수이가 레즈비언 바를 찾아간 순간에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이경이 자신을 싫어할까 조마조마한다.




그렇게 흔들리는 순간, 이경에게 가장 중요한 '은지'와 충돌이 일어난다. 수이의 균열을 틈타 이경의 마음속에는 은지가 침투하기 시작한다. 물집이 터진 이경의 손을 은지가 소독할 때 손목시계를 반사한 빛이 얼굴을 비춘다. 이 빛은 전반부에서 햇살이 이경과 수이가 창고에 있을 때 비춘 빛과 동일하다. 즉 이미 이경의 마음에 은지가 자리 잡았다. 이경은 은지와 종로 거리를 산책하면서 즐거움을 나눈다.(이때 마주한 왜가리는 이경의 죄책감이 투영된 상상이다.) 그리고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은지에게 "저는 수이를 만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지가 한동안 빵집에 찾아오지 않자 전전긍긍하기 시작한다. 이경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며 자주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확장 속에서 찾아온 혼돈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다.




결국 이경은 세 번의 충돌 속에서 크게 흔들리는 인간이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려고 하지만, 수이의 생각은 이해하지 못하며, 은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경은 "나는 욕심쟁이가 싫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경이 제일 욕심쟁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모든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다. 이경은 은지를 마음에서 몰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은지에게 '보고 싶었어요'라는 문자를 받자 '캄캄한 기쁨'을 느낀다.



이경은 수이에게 말한다.


다 나 때문이야. 네 잘못은 없어.

결국 이경은 수이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선택을 한다. 영화에서 스쳐 지나가는 '터진 쓰레기봉투'는 아마 이경의 마음을 묘사한 것이다. 이경은 수이에게 '최소한의 상처'를 주기 위해 '사려 깊은 거짓말'을 시작한다. 이경은 수이에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말일 수도 있는)"다 나 때문이야. 네 잘못은 없어"라고 말한다.(영화에선 말로 전달하지 않고 소설의 문구를 그대로 서술한다. 이경의 간곡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수이는 내색하지 않는 사람답게 "다들 이렇게 사는 거니까"라며 이경을 떠나보낸다.




이경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헤어짐이 있으면 누군가의 잘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진 대부분의 헤어짐은 그냥 시간이 흘렀기에 생긴다. 이경이 수이를 떠나보낸 것도 그냥 시간이 흘러 사랑이 닳아버렸기 때문이다.(영화 초반부에 나왔던 딸기 우유갑에 있던 제비꽃도 후반부에선 시든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한때 싱그러운 사랑도 결국 시들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랑이 시간의 마찰 때문에 마모된 사랑을 죽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끊임없는 세상의 마찰과 사랑의 충돌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혼란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간이 흘러 이경은 서른넷의 '그 여름'을 맞이한다. 영화에서 읊조리는 내레이션과 기억의 토막,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우리는 앞서 모든 것이 이경의 기억인 것을 자각한다. 그러니까 앞서 영화는 2000년부터 2003년에 이르는 시간을 묘사하고 있지만,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Bronze'의 'Haru(with meenoi)'나 '김뜻돌'의 '아참'이 흘러나온 것은 이경의 기억이 어울리는 노래를 삽입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도망가자'는 2019년 노래, 'Haru(with meenoi)', '아참'은 2020년 노래이다. ('김뜻돌'의 '아참'은 여자에게 들이대는 철없는 남자에게 가능성이 없다고 잔소리하는 노래인데, 왜냐하면 그 여자는 동성애자이고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가사가 무척 재미있는 노래이니 추천한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경은 수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다리에서 가만히 풍경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것을 마주한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 <그 여름>은 이렇게 끝난다.


날갯죽지가 길쭉한 회색 새 한 마리가 강물에 바짝 붙어 날아 가고 있었다.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알았다.

그 새의 이름은 '왜가리'이다.(영화에선 이경이 직접적으로 호명한다.) 그 이름을 알려준 것은 수이이다. 이경은 앞으로 왜가리를 볼 때마다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그 여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을 것이며, 혼돈 속에서 죄책감으로 괴로워 한 '그 여름'도 떠올리며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경은 그 새의 이름을 평생 기억하고, 그때마다 마음 한편 고이 간직한 수이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강지희 문학평론가 말처럼 <그 여름>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러는 동안 마음을 채우고 흘러가는 감정들'이 중요한 영화다. 그렇게 계절이 훑고 지나간 자리에서 수이가 이경에게 남긴 사랑의 흔적을 골똘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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