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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기록들, 끝내 외면하지 않을 용기

타인의 고통에 애써 무시하지 않고 가닿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by 권순범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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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펄롱은 수녀원에서 본 것을 아일린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다가 어쩌다 말을 하게 됐는데, 아일린은 몸을 일으켜 꼿꼿하게 앉더니 그런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거기 있는 여자애들도 누구나 그렇듯 몸을 덥히려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다.(중략)

"어쨌든 간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우리 딸들은 건강하게 잘 크고 있잖아?"

"우리 딸들? 이 얘기가 우리 딸들하고 무슨 상관이야?"

펄롱이 물었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 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이런 생각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아일린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울적해지기만 한다고." 아일린은 초조한 듯 잠옷의 자개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중략)

"하지만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54~57p


가식이라고 흘겨보고, 우리 일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당장 더 급한 현실이 있지 않냐고 말하는 시선에도,

타인의 고통에 애써 무시하지 않고 가닿는 자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면서,


12월의 기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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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고리, 잇츠 낫 미>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레오스 까락스


현현한 이미지의 범람,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미디어의 과잉 에너지.

그 사이 나지막한 고민의 숨결과 그리움의 정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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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감독 : 팀 밀란츠


자신의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끝내 외면하지 않을 용기.

나 또한 그 용기 속에서 자라난 것임을.

선의는 대단한 용맹이 아니라, 애써 무시하지 않고 사소하더라도 타인에게 다가가는 한 발자국에서 출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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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감독 : 코랄리 파르자


마치 미디어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한 카메라를 응시하다 보면 자신도 미디어에 융화된다.

자기혐오로 가득한 자아에 관한 이야기이자, 자기혐오로 내모는 사회에 대한 폭발적인 응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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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파사: 라이온 킹>

감독 : 베리 젠킨스


용기와 지혜로 단단하게 직조한 캐릭터 '무파사'보다, 열등감이라는 감정으로 뜨겁게 빚은 '스카'의 출발점이 더욱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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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감독 : 우민호


스파이 장르의 형식으로 만든 매끈한 재미.

위인의 거대한 업적을 다시 이야기하기보단, 연약한 인간의 고뇌를 들여다보며 읊조리는 휴먼 드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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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 분열의 시대>

감독 : 알렉스 갈랜드


이념의 갈등을 반영하여 마치 살얼음을 걸어가는 것 같은 장면들이 드문드문 인상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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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2>

감독 : 황동혁


초특급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재미.

시즌 3에 많은 것을 맡긴 채 시청자에게 짜증을 전가하는 상황과 연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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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감독 : 곽경택


누차 말하지만 메시지가 그렇게 중요하면 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다.

그냥 SNS에 글을 쓰면 된다.

이야기는 이야기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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