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주의에 중독된 우리에게
사회관계망(SNS)에서 ‘#용기내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음식 포장으로 발생하는 일회용품을 줄여 환경에 기여하자는 취지다. 음식점 방문 때 직접 포장할 냄비나 용기를 가져가서 음식을 담고, 그 후기를 SNS에 게시한다. 올바른 소비를 통해 자기 가치관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MZ세대 사이에서 챌린지가 꾸준히 이어진다. 평소 환경에 관심이 있던 나도 캠페인에 동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시청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는 환상을 무참히 깨버렸다.
그 다큐에 따르면 일부 환경단체 주도로 시작되는 이런 캠페인은 환경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버려진 빨대로 바다에 유입되는 플라스틱 양은 전체 0.03%에 지나지 않는다. 태평양 거대 쓰레기섬의 46%는 어선이 버린 어망 같은 조업장비가 차지한다. 진정 바다를 생각한다면 생선을 소비하지 않고, 대기업의 무분별한 조업 행태를 규탄하는 것이 맞다. 빨대를 쓰지 말자는 주장은 아마존을 구하기 위해 이쑤시개를 쓰지 말자는 주장과 같다.
우리 시선이 빨대로 집중되는 과정은 마치 누군가 조종이라도 한 듯 순조로웠다. 지난 2015년 미국 텍사스 A&M대 해양생물 연구팀은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코에 빨대가 박힌 채 발견된 바다거북이 영상을 공개했다. 이 장면은 미디어를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갔고, “당신이 무심코 버린 빨대가 바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식의 캠페인으로 번졌다. 용기내 챌린지가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 큰 문제가 눈앞에 직면해 있는데 파편에 불과한 문제에 온 신경을 쏟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 다큐의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근 강원도 양양군과 원주환경청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구간은 산양 서식지로 알려졌다. 원주환경청은 산양 보호를 위해 2차 보완으로 ‘산양 위치추적기 부착’과 ‘설악산 시추’ 등 10개 항목을 제시했다. 양양군과 개발주의자들은 터무니없는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인간이 그나마 비빌 언덕인 자연을 보호하는 데 터무니없는 요구란 무엇일까? 양양군은 설치구간이 산양 서식지가 아닌 단순 이동 경로라고 주장하는데, 산양이 오가는 길은 마구 파헤쳐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개발주의자 눈에는 자연의 생명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이는 뿌리 깊이 자리 잡은 도시 중심 세계관에서 비롯된다. 산과 들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어 마땅하고, 사람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가꿔야 한다는 믿음이다. 설악산은 그 자체로 존재해야 할 자연이지, 인간이 편히 올라가서 감상하고 말 유락의 대상이 아니다. 환경은 우리 생명과도 직결된 생과 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 중심 세계관에서 깨어나야 한다. 깨지 않는다면 우리의 산과 들이 사라지는 100년 뒤에도 여전히 ‘#용기내 챌린지’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