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앨범마다 변화를 시도했을까?
2017년 7월 20일,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00년대 들어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밴드 보컬의 자살 소식에 전세계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그로부터 3년, 밴드 멤버들은 각자 위치에서 삶을 이어갔다. 밴드의 리더 격인 마이크 시노다는 오랜 벗의 죽음을 잊기 위해 2018년 발매한 앨범 <Post Traumatic>을 시작으로 솔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턴테이블을 담당하는 조셉 한은 작년 JTBC <슈퍼밴드>에 출연해 고국의 팬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다가올 10월에 이들은 데뷔 20주년을 맞게 되지만, 대형 록밴드치고는 너무 조촐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적합한 보컬을 찾으면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했지만, 체스터 베닝턴의 빈 자리를 누가 채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런데도 린킨파크 팬들은 새롭게 돌아올 린킨파크의 모습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껏 그들이 보여준 하이브리드, 즉 융합의 역사가 또다시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뉴메탈의 흐름에 올라탄 린킨파크
90년대는 ‘너바나(Nirvana)’, ‘오아시스(Oasis)’, ‘라디오헤드(Radiohead)’로 대표되는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였다. 이들은 주류 음악시장의 관습적인 사운드에 반발하면서 장르를 개척했지만, 이마저도 주류시장에 편입되자 새로운 음악이 태동했다. 기존 록의 문법에 헤비메탈과 힙합의 강렬한 사운드를 결합해 신선함을 준 뉴메탈은 90년대 후반 록을 지배했다. 처음 주도권을 잡은 밴드는 ‘슬립낫(Slipknot)’, ‘림프비즈킷(Limp Bizukit)’, ‘콘(Korn)’ 등이었다.
린킨파크는 뉴메탈의 인기가 정점에 이른 2000년에 앨범 <Hybrid Theory>로 데뷔했다. 단 두 달 만에 500만장의 앨범 판매고와 ‘빌보드 200’ 차트 2위를 기록했다. 20대로 구성된 신인 밴드가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 록스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라이브 투어를 시작해 무려 324회의 공연을 소화했다. 첫 싱글 ‘One Step Closer’도 순풍을 타고 쉽게 성공했다.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와 체스터 베닝턴의 샤우팅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보컬과 랩이 이어지는 파트 분배로 록과 팝, 그리고 힙합의 요소가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조셉 한의 턴테이블은 하이브리드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솔로 디제잉이 두드러지는 곡은 1집 앨범에 수록된 ‘With You’다. 절규에 가까운 체스터 베닝턴의 샤우팅을 조셉 한이 매끄러운 연주로 이어받는다. 전통 메탈 사운드와 힙합의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Crawling’에서는 MIDI 패드를 이용해 손가락 끝으로 섬세하게 연주한다. 린킨파크의 하이브리드 사운드는 조셉 한의 손끝에서 완성된다.
2003년 발매한 2집 앨범 <Meteora>는 1집의 연장선이다. 뉴메탈 장르의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양한 실험을 시도했다. 특히 수록곡 ‘Faint’를 두고 빌보드는 ‘2000년대 음악 중 가장 듣는 이의 맥박을 뛰게 하는 음악’으로 평가했다. 당시 유행하던 E-스포츠 방송에서 이 곡을 내보내면서 청소년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곡이 됐다. 세기말 분위기를 시원한 사운드로 해석한 대표적인 곡으로 광고 등 여러 매체에서 사용하는 곡이기도 하다.
린킨파크의 시작은 이렇게 뉴메탈의 거대한 흐름을 타고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들이 생명력을 잃어가던 뉴메탈에 그나마 힘을 불어넣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까지 승승장구하던 뉴메탈의 인기도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슬립낫이나 림프비즈킷의 노래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인식됐고, 어느덧 마니아층만 향유하는 장르가 됐다. 린킨파크도 뉴메탈의 영역에 계속 머무른다면 한물간 밴드가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데 이들은 뜻밖의 선택을 했다. 뉴메탈의 색깔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음악으로 찾아온 것이다.
“주류가 우리에게 왔을 뿐, 우리는 주류 밴드가 아니다”
린킨파크의 3집 앨범 <Minutes to Midnight>(2007)은 생존을 위한 분투이자 그동안의 정체성을 깨는 실험이었다. 밴드의 특색인 랩과 턴테이블을 과감히 배제했다. 자연스레 공연장에서도 모습이 달라졌다. 커다란 기타를 등 뒤에 메고 랩을 하던 마이크 시노다는 사실상 체스터 베닝턴의 백보컬로 전락했다. 턴테이블을 사용한 곡도 ‘What I’ve Done’, ‘In Pieces’, ‘The Little Things Give You Away’ 단 세 곡에 불과했다. 마이크 시노다와 조셉 한은 자신의 파트가 없을 때 셀피를 촬영해 SNS에 올렸다. 일부 열성 팬들은 크게 변한 밴드의 정체성에 격하게 반발하며 이탈했다.
4집 앨범 <A Thousand Suns>(2010)에서 실험성은 더욱 강해졌다. 마이크 시노다는 “애초 3집 앨범은 4집 앨범의 실험적인 사운드를 위한 전초전이었다”고 선언했다. 기존 팬들은 거세게 반발했지만, 더 많은 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둬 싱글 ‘The Catalyst’는 게임 <메달 오브 아너> 사운드 트랙에 수록됐고, ‘Iridescent’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OST로 쓰였다.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은 린킨파크는 다시 한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초기에는 뉴메탈이라는 주류 음악에 올라탔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변신하는 모험을 선택했다. 주류를 찾아다니는 밴드가 아니라 자기 음악을 주류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거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과감히 없애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장엄한 사운드에 녹여냈다. 이들이 천착한 주제는 이라크전쟁과 핵전쟁 같은 것이었다.
당시 이들의 정체성은 2010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무대에서 느낄 수 있다. 낮게 깔린 안개와 푸른 조명, 그 뒤로 비치는 웅장한 규모의 그리피스 천문대, 마치 신처럼 우뚝 선 린킨파크에게 관객들은 좀비 떼처럼 몰려들었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치장한 체스터 베닝턴이 핏대를 세우며 열창했고, 관객들은 신도가 된 것처럼 열광했다. 발매하는 앨범마다 완벽한 변신을 보여주니 어느덧 팬들도 그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밴드임을 인정했다.
지금 린킨파크에게 필요한 하이브리드는?
“부활의 노래가 서로 비슷하다는 평이 많다. 예전 같은 명곡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3년 KBS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한 ‘부활’의 김태원은 팬으로부터 뼈 아픈 질문을 받았다. 김태원은 에릭 클랩튼의 히트곡 ‘Wonderfull Tonight’과 ‘Tears in Heaven’을 예로 들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 두 곡이 사실은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같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뮤지션에게 다양한 음악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뮤지션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대중은 늘 새로운 것을 원한다. 그런데도 뮤지션이 쉽게 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색깔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뮤지션은 많으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런데 왜 린킨파크는 앨범마다 변화를 시도했을까?
린킨파크를 처음 결성했을 때 밴드명은 ‘Hybrid Theory’였다. 이 이름을 잊지 못하고 데뷔 앨범명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하이브리드에 관한 애착이 남다른 듯하다. 다양성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모토라면 뉴메탈은 그 가치에 부합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다 보니 헤비메탈에 힙합을 접목했고, 이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움을 찾다 보니 힙합을 버린 꼴이 됐다. 그들의 진정한 정체성은 장르에 얽매인 음악이 아닌 하이브리드 그 자체다. 전쟁과 인류라는 무거운 메시지를 담기 위해 자기 색깔마저 벗어던지는 과감함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린킨파크는 지금 과거에 없었던 큰 변화의 기로에 놓여있다. 체스터 베닝턴이라는 밴드의 목소리를 잃은 이 시점에서 그들의 행보는 어떻게 이어질까? 앞으로 이어질 린킨파크의 변화, 어쩌면 거기서 혁신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린킨파크(Linkin Park)
멤버: 마이크 시노다(랩, 키보드, 기타), 체스터 베닝턴(보컬), 조 한(턴테이블, 샘플링), 브래드 델슨(기타), 롭 버든(드럼), 피닉스 파렐(베이스)
데뷔: 2000년 1집 앨범 <Hybrid The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