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플 땐 이 영화를 초콜릿처럼 꺼내먹어요

내가 사랑한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

by 달리
이미지 출처 Metropolis Japan

영화의 내용과 스토리텔링은 그것의 작품성을 따져볼 때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또다른 요소는 바로 영화의 '미(美)'이다. '영상미'라는 단어가 표현하는 그대로, 하나의 시각 예술인 영화는 그가 담고있는 내용물만큼이나 그것을 보여주는 연출과 시각적 즐거움 역시 포기할 수 없는, 영화 감상의 주요한 포인트이므로. 물론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작품일 테고,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겠지만, 둘 중 한 가지라도 아주 뛰어나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라면 만족스러운 첫 관람과 더불어 재관람의 가치 또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프렌치 디스패치>는 전자의 만족도를 되짚어봐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후자의 경우에서는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싶은 작품이었다.


스토리라인을 소개할 때 보통은 크게 3가지의 에피소드로 나누어진다고들 이야기하던데, 사실 내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에피소드는 가장 먼저 소개된 0화, 어쩌면 프롤로그처럼 느껴질 지도 모를 짧은 이야기였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기자들이 작성한 특종 기사들을 기반으로, 그 이야기를 각각의 에피소드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전반적인 진행 방식인데, 내가 언급한 이 0번째 에피소드는 바로 기자 새저랙이 자전거를 타고 가상의 도시인 앙뉘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 장소들이 과거와 비교해 현재는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5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동안 진행되는 이 에피소드는 어쩌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맛보기 할 수 있는 시간이자,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짧고 굵게 관통하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흘러가며, 우리가 '아주 빠르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조차 100년 전과 100년 후라는 뚝 잘린 단편적인 시간만을 두고 비교해보면 무엇이건 아주 조금씩, 나름의 속도로 이모저모 변화해왔다. 그것이 결론적으로 좋은 쪽으로 변했느냐 나쁜 쪽으로 변했느냐를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흘러가는 날들에 몸을 맡기고 바쁘게 살아가다가도 문득 멈춰 서 돌아본 과거와 대과거에는 지금의 일상에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완전히 다른 평행세계와 같은 모습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프랑스 영화사에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미장셴의 구관과 연극과 일상의 경계 사이의 세련된 연기, 연출, 레트로한 무대들 간의 환상적인 뒤섞임, 과거의 사건임을 분명하게 보여줌에도 어쩐지 데자뷰처럼 연상되는 현대의 몇몇 사건들을 떠올리며, <프렌치 디스패치> 내의 과거, 현재와 더불어 관객 각자의 시간 속 과거와 현재를 영화처럼 뒤돌아보게 된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빠른 영화 속에서 결국 잠시동안 숨 고르며, 나의 지난 날과 지금 서있는 자리 어딘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관람할 가치는 넘치게 충분했다.


영화의 전반적인 진행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고, 대사와 나레이션의 양 또한 많은 편이기에 초반부터 준비 단계 없이 곧장 시작되는 작품의 흐름을 쭉 타고 이어나가는 것이 이 영화를 보다 흥미롭게 감상하는 방법의 핵심이다. 내용 자체가 어렵고 복잡하기보다는, 전개 속도에 의해 따라가지 못함으로 인해 다소 어지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러한 속도감이 웨스 앤더슨 감독의 빈티지하고 직렬적인 구조의 영상 연출과 만났기에 훨씬 더 대조적으로 매력적인 작품이 탄생했음이 분명하다. 마치 오랜 시간 서재에 방치되어 있던 종이 냄새 짙은 두꺼운 이야기책의 베드타임 스토리를 듣고 있는 듯한-집중력을 잃을 듯 말 듯 하면서도 군데군데 숨은 재미에 차마 책을 덮고 잠들 수 없는-기분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이 오래 음미하는 환상적인 디저트 같은 영화를 놓치지 말고 감상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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