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높이 튀어 오르기 전이 가장 움츠러들 때
밴쿠버에 온 지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흐르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은 흐르고 나 자신을 치유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다니지 않던 숲길을 걷고 산을 가고 바다를 가고.
매일매일 해를 쬐고 멍하니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자연을 벗 삼아 길을 걸으면 숲이, 땅이 나를 보호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너른 바다는 잔잔한 파도를 일렁이며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날마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지냈다.
많이 웃고 많이 떠들고 뜨거운 태양을 한가득 쬐며 상쾌함을 몸에 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구직 사이트에서 메시지 하나가 왔다.
‘커피챗 제안’
기업 구직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했던 나는 외국에서만 듣던 커피챗 제안이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언니 설명에 의하면 담당자들 만나서 그냥 간단히 직무에 대하여 이런저런 질의응답을 하는 거니 부담 갖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나는 흔쾌히 커피챗을 수락했다.
나는 당당하게 해외에 체류 중이라 대면 미팅은 어렵고 온라인 미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기업에서는 가볍게 제안을 받아들였고 추후 일정 관련하여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들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추가적인 이력서나 포트폴리오가 있느냐는 안내.
만약 추가 이력서가 없다면 안내된 링크에 들어가 기업폼에 맞는 이력서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포트폴리오는 인사 담당자 이메일로 발송했다.
‘한국은 커피챗에서 되게 많은 걸 준비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이메일이 왔다.
‘면접 일정 안내’
뭐라고?
면접. 일정 안내라니. 나는 가벼운 커피챗으로 생각했는데 면접이라고?
뭐 공문처럼 여러 사람에게 뿌려지는 안내문이니 저렇게 안내했나 보다 하고 무심코 넘어갔다.
미팅 당일.
오랜만에 진행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미팅이 긴장되었다.
이러저러한 질문들을 받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미팅이 진행되었다.
그들은 나의 기존 업무와 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궁금했던 것 같다.
얼추 미팅은 일단락 지어진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커피챗이 아닌 진짜 면접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져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인사절차를 보니 내가 마친 것은 실무진 면접이더라.
‘앗, 망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튿날 나는 그들에게서 다시 연락을 받았다.
단계가 잘 통과되어 기쁜 마음으로 다음 절차를 안내한다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글을 읽어 내려갔다.
다음 절차는 인성검사였다.
중고등학교 때 이후로 인성검사는 처음이다.
흔하게 진행되는 MBTI검사의 심화버전이라고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테스트에 응했다.
헛, 그런데 이게 웬걸.
너무 쉽게 생각해서인가.
모든 답변은 12초 안에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경고에 너무 빨리 답변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변덕스러운 나의 마음에 답변이 꼬였던 것일까?
‘검사자의 답변의 신뢰도가 떨어져 검사가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랍니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나의 생각을 선택했을 뿐인데 신뢰도가 떨어진다니… 나는 다중인격인 걸까?
아리송한 질문들도 많았고 극단적인 질문들도 많았다.
해석하기 나름인 질문들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350개의 문항에 모두 답변을 했다.
경고가 뜬 이후로 검사가 무효가 될까 봐, 이 일을 이깟 인성검사로 그르치게 될까 봐 사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검사를 마치고선 언니와 함께 내가 치른 인성검사에 대해 폭풍 검색을 했다.
실제로 인성검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사람들이 적지 않아 더욱 놀랐다.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아…. 나는 커피챗으로 시작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