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ffering
한낮의 여름 열기가 너 따위는 가소롭다는 듯 거리에서 날 익혀버릴 듯 발산하다가도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예측 불가능한 나의 삶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날씨다.
가끔은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과연 옳은 방향이 있기나 한 것인지.
나를 빼고 모두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고 나 혼자서만 방향을 알 수 없는 무지의 공간의 중간에 멈춰 선 듯하다.
학창 시절, 수학에는 도통 재능이 없던 난 수학시험을 볼 때마다 시험지 위에서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를 내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나를 빼고, 모두가 정답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느끼는 기분. 그 초조함과 불안함.
그 기분을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느끼게 될 줄이야.
나는 살아오면서 다양한 삶의 고비를 마주하며 다양한 숙제를 해왔지만 늘 정답은 알 수 없었고 모험의 연속이었다.
내 나름으로는 치열하게 살아냈지만 그러다가도 어느 지점에선가 늘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는 다르게 보이지 않는 한 곳을 바라보며 엇비슷한 속도로 달려가는 또래들이 부러우면서도 두려웠다.
적당한 나이에 직장을 들어가고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해서 때가 되면 아이를 낳고 도란도란 그렇게 살아가는 삶.
내가 여태껏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뤄낼 수 없었던 그것들을
나중에라도 또래와 비슷하게나마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 두렵고 불안했다.
사는 모습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데도 나는 흐릿하게 섞이고 싶었다.
내 인생도 어느 누구와 다를 바 없이 비슷하고 무난하게.
나이가 마흔이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더 많은 것들을 이뤄낸, 안정적인 사십 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은 전 남편이 되어버린 10대 때부터 함께 자라온 그 사람과도 남이 되어 내가 이혼녀가 될 줄도 몰랐고
이혼을 하고도 10년이 넘도록 혼자일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파티시에가 되고, 회사원이 될 줄도 몰랐고
회사에서 잘려 한 순간에 백수가 될 줄도 몰랐다.
그렇게 불안정한 사십 대를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인생은 늘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아서 상상 밖의 것들이 늘 튀어나온다.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예측불허한 불행들이나 가끔은 행운 역시 꼬박 찾아오고야 만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지만 이내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약간의 불행으로 두드려 맞고 머리가 멍한 상태랄까?
모든 것이 멈춰버린 기분이다.
사실 뭘 해야 할지도 잘은 모르겠다.
세월이 흘러 성능이 떨어져 버린 핸드폰에서 4K 영상을 스트리밍 할 때처럼
내 삶도 세월이 흘러 버퍼링이 생긴 것일까?
잠시 가만히 기다리면 다시 멀쩡히 플레이되게 될까?
또다시 언제 버퍼링이 생길지 모르지만 버벅대더라도 결국에는 정상적으로 플레이되겠지?
결론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니.
조금 느리고 남과 다른 길을 가더라도 나만의 행복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뿐이니.
기다려본다.
이 인생의 버퍼링이 잦아들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