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365 #12

40대를 산다는 것

by LiSA

길을 걷다 우연히 동네 골목어귀에 있는 작은 카페 창문에 붙은 흰 종이를 보았다.


'喪中'


창백한 종이 위에 단정히 인쇄된 그 두 글자가 문득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그 가게를 오며 가며 스치듯 보았을 뿐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었다. 파티시에이자 베이커리 카페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쌓아오던 나는 그곳은 다만 어딘가 못내 아쉬웠던 카페 중 한 곳이었고 딱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카페 주인장의 한 여름날 '상중' 안내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동료애와 사람 사는 냄새를 짙게 풍기며 내 뇌리에 강한 잔상으로 남았다. '이제 우리는 '상중'이란 안내를 낯설지 않게 하나 둘 마주해야 하는 나이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약간 슬퍼졌다.


40대가 되어 본 사람이 있는가?

그대들의 40대는 어떠한가?


나의 경우는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어느덧 40대가 되었고 그마저도 해를 꼬박꼬박 넘기며 내 생의 황혼기를 향해 너무나 빨리 달려간다고 느껴진다. 어릴 적 상상만 해보았던 40대를 빠르게 지나쳐 훨씬 더 먼 곳을 향해서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그렇다고 안 하지도 않았던 철없던 공주병 사춘기 소녀였다. 긍정적인 건지 개념이 없는 건지 IMF를 맞으며 무너진 가계상황에서도 철없음을 잃지 않았다. 4년의 결혼생활도 해봤지만 아이가 없었고 그 사람도 나도 제대로 된 회사 생활을 해본 적도 없이 부모에게 기생하며 용기 없는 부끄러운 젊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일관되게 세상과 부딪히고 도전해보지 못한 채 이혼과 함께 30대를 맞이했고 서른이 넘어서야 남의 녹을 받아먹는 직장 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뒤늦게 정신 차리고 생판 남들과 부대끼며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어느덧 마흔이 훌쩍 넘어있었다. 그러면 나의 명랑함과 철없음이 마흔 만큼 농숙해졌을까?


나는 마흔이 넘으면 더 이상 게임도 안 할 것 같았고, 외국어 한 두 개쯤은 우습게 해낼 수 있게 될 것이라 막연히 상상했었다. 연예인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를 보며 시간을 보낼 것 같지도 않았고,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묵묵하고 의연하게 자식을 낳고, 가족을 위한 집과 차를 사고, 명절이 되면 시댁과 친정을 오가고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에 익숙해지는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마흔 하나의 나이가 될 때까지도 상상했던 것들 중 뭐 하나도 맞아떨어진 것이 없다. 아직도 별다르게 가진 것 하나 없이 철없는 아이처럼 해맑은 정신으로 몸만 나이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나에 대한 고찰은 대기업에 합류하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삶에 농익은 내 또래의 사람들로 가득 찬 새로운 집단에서 낯선 이로서 합류한다는 것은 꽤나 노련한 사회력을 요구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러한 세련된 카리스마와 정제된 사회력은 없었기에 이불킥 하기 딱 좋은 상황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어색한 침묵만이 흐르게 하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나는 세상 때가 덜 묻은, 나쁘게 말하면 세상 어리바리한 맹해 빠진 40대 경력 신입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남들처럼 애초부터 20대부터 커리어를 쌓아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첫 커리어에 안정적이고 좋은 기업에 발을 들이지도 못했으므로 그런 세련된 사회력 따위를 배울 수 있는 경험이 굉장히 소박했다. 또한 다들 뭘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정보가 넘쳐나는 것처럼 보였고, 그들의 묵묵함이 만들어 내는 무게가 날 주눅 들게 했다. 이러한 이유로 매일 아침 출근을 하기 전부터 모두가 잘나 보이고 능숙해 보이는 곳에서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사회 초년생도 아닌데 40대가 되어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이렇게 저렇게 느껴.'

'40대인데도 겁나고 아직 잘 모르겠어.'

'이게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

'나도 두렵고 겁나.'


누구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모두 의연하게 침묵하며 자기의 삶에 집중한다. 다들 잘만 살아가는 것 같은데 과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것은 마치 다들 대단히 영향력 있는 참고서를 하나씩 끼고 살아가는데 나만 그 참고서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어서 헤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니면 다들 나처럼 생각하는데 그냥 매일을 살아내다 보니 그 또한 무뎌진 것일까. 아니면 이 궁금증마저 침묵하는 것일까.


40대라는 나이는 '불혹'이라는 별칭처럼 우아하고, 의젓하고, 노련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철저한 주관적 잣대로 인해 나를 더 폄하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혹은 어떠한 사회적 기대 때문에 나 자신이 갖고 있는 충분한 장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하며 부족한 점만을 파고드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어가며 모든 면에서 더욱 단단해질 것 같지만 몸과 마음은 오히려 더 말랑해진다는 것이 내가 더 나약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사실은 두렵고 힘들다고 고백하자며 우리네 40대를 선동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나 역시도 속 없는 사람처럼 비실 웃어 보일지언정 '저 이렇게 두렵습니다.'라고 겉으로 말할 용기는 없으니 성숙한 어른인 척 화장을 해 순한 눈을 가리고 어른 옷도 잘 차려입은 다음 세상에 능숙한 어른 40대인 척하며 출근 도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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