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ife 365

100원의 추억

by LiSA

100원만 들고도 가게에 가면 꽤나 다양한 과자의 선택지가 있던 시절

통통하고 작은 손에 500원 짜리라도 얹어지면 제법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던 때가 있었다.

어린 기억 속 500원짜리는 묵직하고 한 손에 꽉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커서 그 돈이 유난히 가치 있게 느껴졌었다.


반짝이는 은색 100원짜리 몇 개를 들고 모퉁이에 자리한 집 앞 구멍가게를 달려갔다.

살림집이 붙어 있는 구조의 작은 구멍가게에는 위아래고 꽉꽉 물건들이 들어차 있었다.

비좁은 가게 탓에 안으로 들일 수 없었던 슬라이드형 아이스크림 통을 열면 50원만 내도 사 먹을 수 있는 쭈쭈바가 있었다. 100원이면 제법 근사한 과자나 하드 하나는 충분히 사 먹을 수 있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변한 어느 날 아이스크림 가격, 과자 가격은 언제부터인지 50원씩 차츰 올라가 더 이상 100원짜리 과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1000원쯤은 족히 있어야 떡볶이나 매점에서 간식 한둘은 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물가가 올랐다. 그래도 1000원이면 나름은 야무지게 용돈이랍시고 쓸 수 있었다.

그때쯤에 아이스크림 콘이 750원을 찍었던 것 같다.

진심으로 정말 비싸다고 생각해서 선뜻 아이스크림 콘을 집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잔잔바리 군것질 안 사고 큰 맘먹고 아이스크림 콘을 고르면 나머지 껌이라도 살 수 있는 잔돈이 남는 때였다.

나는 하루 용돈 1000원으로 학교가 끝날 때 동네 큰 마트에 가서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 드릴 맛동산을 그렇게 사갔다. 맛동산, 전병과자 등 1000원으로 얼마든지 플렉스 할 수 있었다.


그 후 IMF가 찾아왔고 가세가 기우는 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게 뭔지 잘 몰랐다.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때, 세기말이라며 모든 것이 멈출 거라는 종말론도 퍼져나갔고 이래저래 흉흉했던 소문이 퍼졌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2000년대가 되었다. 월드컵이 한국에서 열리고 광화문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물결이 장관이었다. 당시 고 3 미대입시생이었던 나는 축구 규칙도 잘 모르면서 미술학원 빠지는 놈은 몽둥이찜질이라는 경고를 뒤로 한채 엄마를 졸라 'Be the reds!' 티셔츠 하나를 얻어 입고 친구들과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고 광화문에 가서 목청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물론 다음날 학원에 가서 진짜 엉덩이에 시커먼 피멍이 들도록 맞았지만 당시에는 체벌이 워낙 당연했기에 그냥 맞고 실실 대고 끝이었다.


삐삐의 시대가 끝나고 PCS폰이 등장하고 그러다 휴대전화의 시대가 찾아왔다. 2G, 3G, 4G, 5G에 이르기까지. 혁신이었던 폴더폰이 납작한 스마트폰이 될 때까지 나는 종이사전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명을 피부로 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모든 변화는 슬그머니 찾아와서 천천히 적응해서 지금에 왔다.

불현듯 정신을 차려보니 100원만도 소중했던 그 시절은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땅이라는 개념이 아닌 남의 집 위에 집 짓고 사는 아파트가 1억 도 아니고 10억이란다. 10억이면 평타고 20억 100억은 정말 뉘 집 개이름이 되어버렸다. 이게... 맞는 건가?

기괴해져 버린 저 숫자가 납득하기 힘들고 정부에서는 이제야 바로잡겠다며 뉴스를 뜨겁게 달구지만

과연 우리의 삶이 달라질까?

스마트 폰도 신기했는데 갑자기 AI가 나타나더니 이제는 AGI시대가 온단다.

그러면서 혹자는 이제는 화폐가 사라지고 부의 평준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앞선 우리의 삶의 방식은 구시대적 유물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또 거기에 맞춰 나름으로 적응하며 살아가겠지.

툴툴대며 그래도 살아가겠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날로그 환경에서 성장해 스마트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나는

100원짜리 동전 몇 개 짤랑대며 가게에 가서 심사숙고하며 물건을 고르던 그 시절이 몹시나 그립다.

붕어빵이 50원 100원 하던 그 시절.

대개의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부를 일굴 수 있던 그 시절이 그저 그립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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