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로
한 회사에 소속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다양한 자질이 필요하다.
근면함, 성실함, 인내력, 분별력, 결단력, 사교력, 酒력 등.
2025년 8월 누구나 이름 들으면 알 법한 회사로 옮겨와 이제 거의 반년을 견뎠다.
처음엔 수습 3개월을 긴장한 채 참으며 지나갔고
이제는 내 자리를 언제 찾아가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혈압 속에서 꾹 참고 견디고 있다.
끊었던 술은 사회생활을 한답시고 다시 입에 대기 시작했고
약국 판매용 고기능 숙취해소제와 간헐적 링거 투약, 그리고 규칙적 비타민 섭취를 바탕으로
이제는 혼자 소주 2병-3병 정도는 거뜬히 마시고 활기차게 인사하고 괜찮은 척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40대 싱글 여성으로서 남성들이 대다수인 회사에서 적응을 한다는 것은
위의 나열된 힘들 말고도 어디서나 무뎌질 수 있는 넉살과 유쾌함이 필수 덕목이었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넉살+사리 분별력이 필수였다.
다음 날 만나면 어색할 수 있는 자리도 웃으며 쿨하게 인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꿔낼 힘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에 편하게 살다가
이혼 후 바깥세상으로 드디어 튀어나와 서른 살 이후로 제대로 시작했던 사회생활은 자영업이었고
그러다 새롭게 출발한 첫 발걸음은 이름난 게이 회사였다. 거기서 근 10년을 보냈으니...
즉, 나는 마흔이 될 때까지도 일반인들이 북적이는 '보통의 회사'는 경험해 본 적 조차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파티시에라는 전문적 기술직을 바탕으로 꽤나 높은 직책까지 올랐던 나는
정치 따위로는 판가름할 수 없는 실력 중심의 세상에서 업무를 해왔던 터라 더욱 어려웠다.
하... 참으로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프다.
그간 쌓아온 학력과 커리어가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숙맥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새로운 새 회사에서의 내 삶은 정말 새롭게 탄생 중이다.
대부분 비슷한 그릇과 비슷한 역량을 지닌 곳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어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일은
국회 의사당 못지않은 정치질을 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조금은 깨닫는 중이다.
그러므로 나는 약발로 버티며 괜찮은 척 다양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지 아니한가?
혹자는 말한다.
'와, 기술직에서 어떻게 사무직으로 가셨나요? 그것도 대기업을요!'
인정한다.
나는 운이 좋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놀지도 않았다.
기술직을 배경으로 언제나 나는 사업 기획업무를 도맡아 하며 회사 확장에 열과 성을 다했다.
없는 일을 만들어 가며 말이다. (그것은 스타트 업이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즉, 운 좋았던 것은 또 맞다.)
그래도 나름 힘들게 살며 대학원도 가고 수석 졸업도 하고 우수논문 상도 받았다.
제법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지금 이곳 새 회사에서
나는 그늘에 서 있다.
누군가의 어두운 그림자 밑에 감춰진 채 부속품으로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로 일하고 있다.
언제든 교체될 그런 부속으로.
닥치고 꿋꿋이 다니면 될 일을 내 성질머리에는 이게 왜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답답한지 모르겠다.
내 이름 석자를 알리지 못함이 갑갑해 돌아버릴 지경이다.
사주 풀이에서 말하듯 내 팔자에는 '제왕'의 기운을 두 개나 깔고 있어서일까.
2026년도 꼭 참고 버텨보도록 하자.
시간은 여느 때보다 쏜살 같이 지나가고 있으니.
그늘을 벗어나 태양 아래로 가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