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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Mar 20. 2024

한 잔의 추억

한 손엔 온종일 아이스아메리카노

20살 새내기 3월에 처음으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어. 학교 안에 있던 ‘할리스’였지. 일산 촌놈은 스타벅스, 이디야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브랜드는 서울에서 처음 봤다. 스타벅스는 캐나다에 있을 때 1일 1 프라푸치노를 했었거든. 초콜릿 자바 프라프치노 먹고 1년 동안 17kg 쪘지…

이디야는 고등학교 근처에 있었는데, 첫 연애 볼 키스…? 그 뭐라 하지 단어가 기억이 안 나네! 경험이라 알지. 하지만 그땐 아이스티를 마셨거든. 인생 첫 ‘아 아’라니, 무슨 맛일까 좀 떨렸어.


인생 첫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쓰더라. 그리고 심장이 두근두근…. 신기했지. 커피는 몸에 안 좋다고 한 엄마의 말을 듣고 커피를 마시지 않았었지만, 친구들이 다 마시는데 나만 안 마시기 뭐해서 따라 마셔봤던 거지.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주위 친구들이 다 먹길래 한약 먹는 느낌으로 코 막고 벌컥벌컥 마셨었어.

그날 잠을 못 잤는데, 그게 커피 때문인지 몰랐지…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줄 알았어. 무엇보다 맛이 너무 없었거든. 그래서 그 뒤로 아이스티를 마셨어.


20살 동안 내 식후 디저트를 담당하던 할리스. 그런데 그 할리스가 사라진 거야. 학교와의 협상에 실패했나 봐. 내가 많이 사줬는데 왜 잘렸을까… 어쨌든. ‘디 초콜릿? ‘뭐 이런 카페가 그 자리에 들어섰지. 남자 특, ’ 인생 첫‘ 무언가에 괜한 의미 부여하잖아. 인생 첫 커피 할리스가 사라진 게 뭔가 좀 아쉬웠달까. 물론 그 뒤로 그 카페들을 안 간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길거리를 걷다가 할리스를 보면 내적 친밀감을 느끼곤 했지.


시간이 5년 정도 흘렀어. 풋풋하던 20살이 조금은 덜 파릇한 25살이 되었지. 그동안 커피도 많이 늘었어. 군대에서 불침번 서기 전에 잠을 쫓기 위해 한 모금. 한여름 훈련을 끝내고 PX에 가서 마시던 시원한 바닐라 라테. 맘에 안 드는 옆 중대 간부가 커피 타오래서 맞선임과 함께 타던 커피믹스.(맞선임이 그때 그 간부 거에만 침을 탔었는데, 진짜 티가 안 나더라.) 화룡점정으로 내 맞후임이 커피 가는 기계를 가져와서 커피를 타 주곤 했었어. 그 덕분에 의도치 않게 커피가 늘었다.


수많은 커피들을 마시며 첫 아메리카노의 기억이 흐릿해질 때쯤,, 할리스가 동네에 생겼어.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생겼는데 난 코로나가 무서워서 카페에 갈 생각을 못했거든. 코로나가 끝나갈 즈음 공부를 하려고 방문했지. 2층에 있는 할리스를 가기 위해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계단을 오를 때 마치 학교를 처음 가보는 새내기처럼 아주 조금 설렜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했지. 새내기 때는 점원분께 주문했었는데 여기엔 키오스크가 있더라. 점원 분께 주문할까 키오스크로 주문할까 고민을 했어. 잠깐의 고민 끝에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기로 결정! 키오스크도 못 쓰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젊은이가 되기는 싫은 생각이었달까.


진동벨과 교환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자리에 앉았어. 한 모금을 빨대로 마셨지. 맛은 뭐…. 아이스 아메리카노지.

하지만 그 한 모금이 새내기 시절을 생각나게 하더라. 한잔에 2천 원 하던 아이스티를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로 몰방 내기를 하던 기억. 동기 여자애와 학교 건물 옥상 카페에서 ‘ 여자 동기가 연애를 하면 내가 밥 사준다’는 내기를 했던 기억. 그 내기를 하고 있을 때 내 옆에 남자 동기 애가 앉아 있었거든? 근데 알고 보니 이미 걔네 둘이 사귀고 있더라고! 하하하. 또 나만 몰랐지. 그 외에도 라디오 편집을 하다가 지하철 막차를 놓쳐 집을 못 갈 뻔했던 일…. 등등


누구는 에스프레소에 얼음물을 탄 허접한 음료수 취급도 안 하는 물이겠지만, 그 순간 나에게는 신기한 물이었어. 해리포터에 펜시브에 담긴 물을 마신 느낌? 해리포터 영화에서 덤블도어가 자신의 기억을 뽑아서 펜시브에 담거든. 그리고 그 물속에 얼굴을 넣으면 그 사람의 기억을 체험할 수 있어. 그것처럼 내 새내기 기억을 잘게 갈아서 만든 음료수를 마신 거지.

펜시브에 들어갔다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흐억!’하면서 한 동안 정신을 못 차리거든? 나도 그랬어. 추억여행을 진득하게 하다 보니 정신을 못 차린 거야. 공부를 했겠냐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 동영상을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도 잠을 못 잤어. 그때까지도 몰랐지. 그게 커피 때문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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