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미쳐버린 왈왈
러브버그
여름이 벌써 다가왔네요. 아직 7월도 아닌데 어쩜 날씨가 이렇게 더운지. 12층의 층고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너무 덥더라구요. 오랜만에 창문을 활짝 열고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창틀을 보니 봄에 청소를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초파리들이 창틀 사이에 끼어 죽어있는 게 보이더라구요. 요즘엔 특히나 길거리, 아파트 등 어딜 가든 벌레가 참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요 몇 년 사이에 사람들에게 집중을 받는 벌레가 있습니다. 암수 한쌍이 들러붙어서 같이 날아다니는 벌레, 러브버그인데요. 생김새가 반딧불이랑 비슷해서 반딧불이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파리목 동물이었습니다. 사이좋게 붙어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벌레들... 붙어 다니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좀 귀엽긴 한데....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는 짜증 나요. 한 번은 자정즈음 PC방을 나와서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겁도 없이 커플벌레 넘들이 제 팔에 앉더라고요. 콱 씨. 죽일 수도 없고....
의외로 러브버그는 살아있을 때는 익충이라고 합니다. 벌레는 낙엽을 분해시켜 토양을 비옥하게 해 주고, 성충은 꽃의 수분을 돕는답니다. 러브버그가 이렇게나 많으니 도심 꽃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근데 러브버그가 죽고 나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해요. 벌레의 내장에는 산성이 있기 때문인데요. 유리창은 괜찮지만 페인트가 부식되거나, 잘 안 떨어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러브버그 시체는 빨리 빨릴 치우시길 바라요!
저는 러브버그를 보고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었어요. 그 왜 버스정류장이나, 터미널? 같은 곳에서 러브버그처럼 찰싹 달라붙어있는 사람들이요. 사이좋게 붙어 다니는 건 보면 귀엽긴 하잖아요. 근데 가끔 눈살 찌푸릴 정도로 붙어있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딱 러브버그 같았어요.
러브버그는 벌레들을 지칭하는 말이니까, 사람들한테는 사랑충이라고 할까요. 요즘 충이라는 단어를 접미사로써 대상을 비하하거나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니까, 괜찮은 비유일수도? 사랑-충. 사랑을 왜 그렇게 하니? 그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될 수 있을까요.
사랑충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충이라는 개념이 생긴다면, 그 하위에는 정말 여러 가지 과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이 생각을 하고 나서는 '짝사랑부터 이별까지 정신적, 신체적 과하고 좀 꼬름(?)한 행동들을 모두 사랑충 단어로 정의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설렜습니다. 마치 새로운 개념을 우연히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죠.
예를 들자면 '집착이 너무심한과' , '금사빠과', '될 때까지 도끼로 찍는다과', '미련 줄줄과', '내로남불과' 등등... 말하면 뭐든지 사랑충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모든 사랑의 형태를 사랑충이라는 단어로 귀결 짓고 프레임을 씌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별로네요. 자기의 생각이 항상 옳아야 한다는 오만에 빠지기 좋은 애매한 개념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위에서 말한 예시들도 제 생각일 뿐이니까, 일반화충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네요.
여자친구 노래 중에 'love bug'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2018년에 나온 노래인데, 노래 가사 중
'손톱보다 더 작지만
엄청난 너의 존재감'
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때는 러브버그가 굉장히 작고 귀여운 팅커벨 같은 벌레겠구나 싶었습니다.
요즘 거리에 러브버그를 보면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가사가 고증이 잘 되어 있었네요.
존재감 하나는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