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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Jan 22. 2024

24.01.22 글쓰기연습(2)

넌 나의 홈즈, 왓슨

하루에 두 개의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일단 셀프 칭찬~


앞선 글에서 보았 듯, 어제 연극 쇼케이스를 보고 왔다. 연극을 좋아하지만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연극도 아니고 연극 쇼케이스라니 무슨 이유였을까. 바로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공연 쇼케이스였기 때문이다. 새하얀 피부, 큰 키, 곱슬머리의 친구는 서양적인 몸에 한국적인 얼굴을 갖다 박았다. 대충 알파 메일이라는 뜻이다. 그런 친구가 19살 겨울 독서실 휴게실에서 처음 연기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 너가 뭘 결정하는 응원할 테지만, 잘 생각해보고 하도록 해”라고 말해줬지만 속으로는 ‘너 정도면 될거야….아마…’라고 생각했었다.


인간관계가 넓어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이 친구와는 관계는 조금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처음 봤을 때 정말 투명한 아이였다. 외모도 투명했지만, 속도 투명했다. 때 묻지 않은 느낌이랄까. 중학교 1학년 때 아이언맨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친구는 전기회로를 독학해 가며 아이언맨의 상징인 ‘슈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나에게 설명해 줬다. 직접 철물점에 가서 철판을 구매하고, 아크원자로가 될 전구를 구매해 아크원자로를 만들고, 그 판들을 이어 붙여 가슴팍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영어 수업시간 내내 같은 책상에 앉아 나에게 떠들어댔다. 그리고 방과 후 수업 때는 아크원자로를 만드느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선생님의 수업 대신 잠을 청했다. 그때 참 자신의 기호와 의사표현이 확실하다 못해 투명하구나….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친구가 보는 나를 통해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거울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이 친구에게는 좀 더 신중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지만 주변을 담을 수 있는 구슬 같은 친구가 연기를 한다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상상이 잘 안 가서 그 연기인생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고3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PD였고 이 친구는 배우였기에, 서로 미디어에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즐겼다. 우리는 감자튀김 한 개를 앞에 두고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했다.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특정 장면의 카메라 연출, 배우의 제스처, 시선처리 등등 영화에서 이야기 가능한 모든 거리를 모두 섭취했다. 콘텐츠를 볼 때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의견을 제시하는 내 능력은 이 친구와의 토의가 발현시켜 준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 이후에는 미래에 서로의 모습을 상상하며 덕담(?)을 해주고 헤어지곤 했다. 10년 후에 시상식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이가 되자. 그렇게 되기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직업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자.라고 이야기했었다.


19살의 약속은 28살인 된 지금 아직 진행 중이다.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무적인 상황은 둘 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약속을 지킬 준비를 하고 있다. 어제 본 연극 쇼케이스에선 성장한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전에 두 번의 연극을 올리고 한 편의 웹드라마를 찍었는데, 앞선 모든 것을 넘어서게 성장했다. 최근 그의 연기 연습을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척추와 목은 편안하게 만드는 연기 방법론(이름은 까먹었다ㅜㅡ)에 대해 듣고, 이를 같이 연습했던 적이 있었다. 그 영향인지, 연기할 때 그의 목을 조금 더 열심히 보았던 것 같다. 전에 연극에 비해서 목은 조금 더 편안해 보였고, 그가 연기할 때 목을 더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쇼케이스에서 화자로서 바냐가 의자의 앉아 있는 교수의 모습을 보는 연기를 했는데, 손에는 호롱불을 들고 교수의 모습을 훑었다. 그때 그의 목이 쭉 길게 빠져나와 있었는데, 적당한 텐션이 목에서 느껴졌다. 이전 연극에서 찔레긴을 연기했을 때 목에 들어가던 힘과는 달랐다. 다른 대사들도 튀지 않고 적절하게 잘 녹아들었다. 연기의 ㅇ도 모르는 나지만, 이전보다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를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었다는 것은 보기 편하다는 것이니까, 그것 자체가 엄청난 성장이지 않을까.


쇼케이스 시작 전 친구가 ‘쇼케이스라 좀 거칠 거야. 앞으로 재밌는 공연들도 많이 해볼 수 있도록 할게’라고 카톡했는데, 난 ‘너가 재밌는 공연을 하려무나. 우린 뭐든 즐겁게 볼 수 있으니’라 답해줬었다. 쇼케이스가 끝난 후 그의 얼굴을 보니 스스로가 즐긴 연극을 했고, 조금은 만족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즐기는 연극을 한다는 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하듯, 어제 그는 그 장소에서 쇼케이스 전 자신을 이긴 승리자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고 있자니 욕심이 생겼다. 나도 지금 내 스스로를 뛰어넘는 내가 되고 싶었다. 성장하고 성장해서 내가 먼저 시상식에 올라 멋지게 친구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별게 다 승부욕이 생기는 이상한 성격이다. 하지만 좋은 자극이다.


오늘 오후에 영국드라마 ‘셜록홈즈’ 1편을 보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간 군의관 출신 왓슨 박사는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다리를 절게 된다. 하지만 홈즈를 만난 후 반나절만에 런던 시내를 뛰어다니고도 스스로 지팡이가 없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홈즈가 왓슨의 정신을 트라우마로부터 확장시켜 준 것이다. 그리곤 그 다리를 사용해 홈즈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다. 이후 둘은 최고의 콤비가 된다. 나와 이 친구도 서로의 정신을 자극하고 도와주며 셜록홈즈와 왓슨처럼 최고의 콤비가 될 수 있음을 소망해 본다. 연극 잘 봤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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