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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May 17. 2020

상상과 실현 사이

사건 이야기


  상상하던 것을 상상으로 끝내지 않고 실현하여,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면 혁신이 되지만, 부정적인 방향이면 범죄가 된다. 과학기술, 화상통화, 배달앱 이런 것들은 혁신이 되었고, 절도, 성범죄, 살인 이런 것들은 범죄가 되었다.


  누구나 상상은 할 수 있다. 갑자기 돈이 많아져서 원하는 명품을 모두 다 사는 기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과 진하게 정사를 나누는 장면. 너무 미운 저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증오. 상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는 상상이 사회통념의 범위를 넘어서는 실현이 될 때 범죄가 된다. 특히 가해자도, 피해자도 상상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더욱 치명적이다.


  30대 초반의 평범한 한 남자가 있었다.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한 여자를 알게 되었고, 서로 호감이 싹튼 터라 둘은 금세 사랑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고백을 하고,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안고, 키스하고, 잠자리까지 가졌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모든 것이 평범했다.

  문제는 남자가 마지막 단계를 거치고, 편안하게 잠이 든 연인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데 있었다. 이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첫 잠자리가, 너무 좋았단 거다. 어두운 방 정신없이 두근거리며 관계를 맺기는 했지만, 여성의 신체를 실제로 제대로 본 적이 없어 너무너무 궁금했다고 한다. 관계 맺는 내내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얼굴만 보았고, 정작 궁금한 곳에는 감각만 있었으니, 눈으로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두운 밤,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을 펼치다, 고민하다, 참다, 끝내 참지 못하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궁금했던 부위를 찍다가, 걸리고 말았다. 


  참았어야 했다. 아무리 궁금해도 참았어야 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공식적으로 게재된 여성의 성기 사진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처음부터 악의가 있었든, 단순 호기심이었든 본인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버린 그 순간 범죄가 성립되고 만 것이다. 

  그 남자가 어떠한 처벌을 받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아마 전과가 없고, 꽤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각종 반성문과 탄원서로 그리 높지 않은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뉴스에 유명한 연예인 사건 같은 경우도 결국 감형이 되지 않던가. 하지만, 이제 피해 여성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깊이 잠들지 못할 것이며, 혹시라도 내 사진이 이미 퍼진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남은 삶을 살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한 상상 대신, 불현듯 떠오르는 이번 기억이 불편한 상상을 만들 것이다.


  뉴스를 보면, 의외로 카메라를 이용한 성범죄는 타인이 아닌,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더 많이 일어난다.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도 종종 있다. 상상이 호기심에서 장난처럼 일어나든, 작정하고 계획적으로 커지든, 우리는 안다. 무엇이 실현될 때 범죄가 되는 상상일지. 본인이 하는 실현은 걸리지 않고 완벽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만, 그것은 꽤 위태로운 기대라는 것도 안다. 


  행복한 현실을 위해 상상을 상상으로 놔두는 결심이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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