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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선영 Jun 02. 2020

욕심에 대하여 - 로맨스 스캠

사건 이야기


  가끔 사건을 접수받다 보면, 얼토당토 안 한 범죄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로맨스스캠이다. 

  로맨스 스캠이란 연애를 뜻하는 ‘로맨스(romance)’와 신용 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이 합쳐진 말로, SNS 등으로 친분을 쌓은 뒤 돈을 갈취해 내는 사기 기법을 뜻한다. SNS 등을 통해 준수한 외모를 가진 타인의 프로필 사진을 도용하거나, 유명인 등으로 신분을 위장해 이성에게 접근해 애정을 표현하며 친분을 쌓은 뒤 거액을 뜯어내는 식이다. (다음검색. 에듀윌 시사상식)

  로맨스스캠의 대표적인 스토리는 “내가 어렸을 적 입양되어 지금은 미국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데, 당신과 결혼하여 한국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런데 정착금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가진 돈을 처분하려면 수수료가 필요하니 송금비용을 포함하여 2백만 원을 보내달라. 세금을 내야 하니 3백만 원을 더 보내달라. 앗차차. 비자도 만들어야 하니 블라블라. 이것만 송금해주면 당신을 상속자로 어쩌고 저쩌고.”


  다 거짓말이다.


  중년의 아저씨가 당하기도 하고, 멀쩡한 아줌마가 당하기도 한다. (의외로 10~20대는 로맨스스캠에 잘 빠지지 않는다. 일단 젊은 애들은 사기를 당할 거액의 돈이 없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거의 전재산을 허깨비에게 날려 보내는데, 그분들의 진정서를 보면 집 보증금까지 홀라당 송금하고, 과연 남은 생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범인 대부분은 외국의 아이피를 사용하여 검거하는 것도 극히 드물다.



  어쩌자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큰돈을 이체했을까?

  믿음을 가장한, 사랑으로 빙자한, 욕심. 사기꾼은 돈과 함께 욕심을 받은 것이다. 



  첫 번째 욕심은 자신이다. 바로 나를 감출 수 있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이고,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20년 지기 동창, 숟가락 개수도 다 알아 새로울 것 없는 동네 사람들. 이미 한바탕 로맨스가 휩쓸고 지나가고 결국 나의 차지는 없었던 등산모임, 먹고살기 바쁜 가족들까지. 이곳에서 나는 지질한 연애사를 들켰고, 궁핍한 형편이 스며 나왔으며,  보잘것없는 것 같은 외모로 움츠러들었다.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내 주위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메일 속 그 사람은 나를 모른다. 심지어 외국에 있다. 그렇기에 나는 나를 새로운 인물로 세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가장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성격, 그다음은 실제로 만날 때까지 들키지 않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외모, 어쩌면 나도 완벽하게 숨길 수 있는 나의 궁핍함. 가난함. 빈곤함. 그리고 서러움, 외로움. 그렇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기를.


  두 번째 욕심은 타인이다. 바로 그 사람이 돈이 많은 것. 그 사람이 진짜로 나와 사랑에 빠지기만 하면 그 사람의 재산을 나와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점점 내가 조급해진다. 어서 그 사람이 한국에 들어오기를. 그래서 나도 부자가 되어 이 빈곤에서, 초라함에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화려한 기대. 망상. 



  연애의 순서는 보편적으로 정해져 있다. 옛날부터 그랬고, 초딩들도 안다.

 ① 소개받기 → ② 진짜 만나기 → ③ 밥 먹기 → ④ 데이트를 하기(이때부터 썸) → ⑤ 손잡기 → ⑥ 포옹 → ⑦ 뽀뽀 → ⑧ 키스 → ⑨ 그다음 순서에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것 같을 때 결혼을 이야기한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2단계나, 4단계에서 선물을 하지, 거래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4단계의 썸도 아닌, 2단계 “진짜 만나기”도 실행되지 않았다면 그건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부질없는 일이다. 연예인은 콘서트에서 직접 만나기라도 할 수 있으니까.


  대부분 로맨스스캠의 결과는 <성명불상 – 기소중지> 영원한 미제로 남아 공소시효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기를 당한 그분들의 대출잔액은 공소시효가 지나도 끈질기게 살아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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