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이 글을 쓸 시간이 있나?
3월 10일 오후 12시.
현재 글을 작성하는 2월 27일 새벽 4시로부터 겨우 1주일 조금 넘게 남은 날짜면서도
오늘 진행한 과제 미팅을 바탕으로, 새로운 과제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이다.
교수님 말씀이라면 코끼리도 냉장고에 넣어야 한다는 대학원생이지만, 나는 좋은 교수님과 선후배 덕에
아직까지는? "말도 안되는 일"은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촉박한 기간에 맞춰서 과제 제안서 혹은 발표 자료를 만드는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아예 불가능한 일을 시키는 것 보다는 좋다고 안심해야 하나..?
기한이 상당히 빠듯한 나머지, 친한 선배의 청첩장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에 불안해야 하나..? 어떤게 정답일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일 교수님께 메일이 오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중이다.
그럼 대체 이 늦은 시각에, 일도 하지 않으면서 왜 이 글을 쓰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나뉜다.
첫 번째는, "담낭" 작가님의 글을 정독해 버린 것.
나 또한 대학원을 졸업하면 S 반도체 기업("S사" 라고 칭하겠다) 에 취업해야 하는 산학 장학생이기에, S사를 다니시는 중이거나, 다니셨던 분들의 후기는 너무 생생하고 피부로 와닿는다.
마치 미래를 살짝 엿보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글을 재밌게 읽던 와중에, 나 또한 내 후배들에게 인생을 미리 엿볼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술이나 퍼마시고, 게임이나 하는 시간에 비해서는 상당히 생산적인 일 아닐까?
매일 매일의 기록을 남긴다면 미래의 나 또한 추억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두 번째는, 조교를 진행했던 학생의 연락을 받은 것.
대학원 과정에서 진행한 반도체 프로그램의 조교로 참여했었는데,
학생(A) 한명이 프로그램 이후에도 조언 상담을 부탁했었다. (특히 S대와 P대를 고민하며...)
나보다 훨씬 뛰어난 학생이었기에, 내가 괜히 인생의 잘못된 길을 추천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며
여러 선후배들에게도 A의 상황을 말해주며 조언을 구했고, 결국 A는 내 추천을 따라주었는데
대학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아서 너무 뿌듯했다.
그 와중에 어느덧 대학원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조언을 해주는 과정에서
"내 생활과, 내가 느낀 팁들이 누군가에게는 진로를 고민함에 있어서 절실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쏴악 퍼졌다.
뭐,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사건이 독립적으로 벌어졋다면...
"에이 내가 무슨 글이야~" 라며 양치나 하러 갔겠지만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지금. 지금이 아니면 키보드에 손을 올릴 일이 없다는 생각에
첫 글을 작성하고 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닿지 않아도, 스스로 일기를 작성하듯이 기록하는 것 자체로 의미있다고 위로하며
앞으로도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를 기록해볼까 한다.
해야하는 연구는 안하고, 이러는 모습을 교수님께서 보시면
"얘가 좀 편한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이정도 자유는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솜씨가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내 20대 마지막을 생생하게 남기고 싶다는, 지금 이 마음에 따라야겠다.
정말 오랜만에 자의로 장문의 글을 작성해보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