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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학원생의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건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

by 띠에

필자의 기억으로 마지막 글을 작성한지 어언 1달이 넘은 것 같다.

브런치 스토리에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스로에 대한 오만이자, 대학원에 대한 겸손이 부족했다.


필자는 보통 새벽 2~3시 혼술을 마친 후 약간의 취기와 함께 글을 썼던 것 같은데

이는 필자에게 있어서 귀중한 여유시간이자, 하루의 마무리다.

그 시간에 새벽 감성까지 곁들여 지면, 필자의 솔직한 일기이자 수필인 브런치 스토리가 작성되는 것 같다.


다만, 아무리 감성이 중요하다 한들 나는 엄연히 대학원생 아니겠는가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마무리 단계였던 논문이 리비전이 왔고, 이에 대한 답변 및 proof를 거치며

오늘 최종 publish가 됐다.


당연히 1달간 미친듯이 논문만 부여잡은 것은 아니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나이가 나이인지라 청첩장 모임에도 참여하고, 여러 딴짓도 많이 했지만

글이란 것은 여유에서 나와야 진심이 묻어난다고 생각하기에, 논문이 마무리 된 4월 16일 새벽 3시

지금 글을 작성한다.




논문. 대학원생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여겨지는, 쉽게 말하면 고급진 보고서이며,

어렵게 말하면 한 대학원생의 수년의 결과물이다.


간단하게 논문을 쓰는 프로세스를 말해보자면

주제 선정 -> 실험 -> 논문 작성 -> 투고 -> 리비전(revision) -> accept -> proof -> publish

의 과정을 거친다.


이번 논문은 졸업한 S, J 선배와 같이 진행한 논문으로,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첫 논문은 석사 주제를 가지고 혼자 모든 프로세스를 진행하며 골머리를 앓았지만,

한번 논문을 써봤기도 했고, 이미 "논문 작성" 단계에 와있었기에, 나에게 상당히 부담이 적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면 필자를 공1저자로 넣어줄 리 만무하다

(공1 저자 = 논문의 대표 저자인 1저자와 동등한 credit을 가져감. 보통 공1 저자의 갯수로 실적을 파악)


이 논문은 이미 높은 저널에서부터 여러 번 튕겨져 나온, 즉 review를 받지 못하거나 revision에서 떨어진 상태였기에, 어느 정도의 추가 실험 혹은 글 작성이 필요했다.

(=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부 or 수정 단계에서 거절당함)


그렇기에, 처음 논문에 더하여 필자의 추가적인 insight를 포함하고, 논문의 퀄리티를 업그레이드 해야했으며

학교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학생이 나였기에, revision을 담당하기로 한 것이었다.


다행히 마지막에 투고한 저널에서 revision 요청이 왔으며, 이에 대한 대응을 지난 1~2달동안 진행하였다.

revision.PNG 교수님 성함, 논문 제목, 메일 주소 뭣 하나 드러나면 신상이 너무 특정되기에, 조금 더럽지만 지웠다


일반적으로 revision이라 함은, 말 그대로 수정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만, 단순한 수정이라기보다 편집자 측에서 다른 대학원 교수들에게 우리의 논문을 보내고

각 대학원의 학생들이 우리 논문을 보고 궁금한 점,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점,
이 외 여러가지들을 요구하면 우리가 반영하는 과정이다.


당연하게도... revision의 퀄리티에 따라서 accept 여부가 결정되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나 혼자만의 논문이 아닌, 선배들과 같이 작성하기에 더욱 부담된다)


운이 없다면 여러번 리비전을 진행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한번에 끝났고

마침내 두번째 논문이 억셉되었다.


라고 끝나면 참 좋았겠지만, 위에서 말했듯 이후에도 몇 가지 귀찮은 일이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proof.


쉽게 말해서, "너가 작성한 논문의 저자, 내용, 오타, 참조, 등등 수정할 것들 싹 검토해!"

라는 과정이고, 단 48시간 이내에 모든 검토를 마쳐야 한다.

(3주간의 리비전, 48시간의 proof 과정과 겹칠까봐, 결혼 직전에 논문 투고를 미루고 있는 선배도 있다)


그리고 proof를 제출하면... 마침내 저널 측에서 논문의 publish 소식을 전해주고,


해당 논문을 가벼운 마음으로 손에서 떠나보낼 수 있다.


publish.PNG 정말 publish가 되자마자 글을 쓰러 왔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논문 관련 뿐 아니라 이모저모 신경이 많이 분산됐었다.

과제 제안서 작성, 새로 진행하는 실험, 밤을 새서 공정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다만, 지금 후회되는 것은 글을 쓴다는 게 나에게 스트레스가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내 얘기를 들려주며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글 작성을 미뤄왔던 것 같다.


남은 대학원 기간동안 분명 일에 너무 치이고, 취기에 굴복해서 새벽에 쓰러지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지 않는 시기가 분명 있겠지만

새로 찾은 글쓰기라는 취미는, 막상 작성하고 나면 상쾌한 뿌듯함으로 보답받는 것 같다.


뭐 아무튼, 두 번째 논문도 마무리 했고

박사 졸업 글을 쓸 때 쯤에는 10편 이상의 논문을 작성하여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에게, 필자가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대학원생임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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