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석사 졸업의 자격이란

대학원 생활 이모저모

by 띠에

필자의 글은 항상 비슷한 시각에 쓰여진다.

새벽 2~4시, 퇴근한 내가 맥주나 막걸리를 한잔 하고 기분좋게 취한 상태에서 작성하기에

늘 비슷한 시간, 그 날 있었던 일을 주제로 삼는다.


대학원 생활을 하다보면, 통상적인 학창시절과 다르게 매일 다른 일이 벌어진다.

통상적인 에피소드는 선후배들간의 노가리 주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 상당히 우울한 일이라면

적어도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야기거리로 삼지 않는다.

(물론 장난으로 놀리는 일은 배제한다)


그러나 오늘은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이해가 되기에... 사견을 듬뿍 담아 글로 기분을 기록하고자 한다


TMI지만, 필자는 현재 S 전자 산학 장학생의 대표를 하고 있으며, 오늘은 그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말은 거창한 회식이지만 족발집에서 밥 한끼 하고 다같이 영화를 보는 일이 전부일 뿐인 하루

처음 회식을 주도하게 된 상황에서 음식은 제 때 나오지 않고... 신입생들의 얼굴은 어색하기에

애꿎은 연구실 직속 후배만 옆에 끼고 지냈던 하루였다.


간신히 회식 및 영화 관람을 마치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타 연구실 후배(자차 보유)의 덕에

연구실로 편하게 들어와 자전거를 탈 까 고민을 하던 중

화, 목, 토 그리고 일요일의 저녁 및 술 약속을 상기하며

"그래.. 오늘이라도 좀 열심히 살자" 라는 마음으로 오피스에 입성했다.


어제 새벽와 오늘 아침에 간신히 뽑은 데이터들을 피팅하며 연구에 몰입하려는 찰나

평소 꼼꼼하고 연구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천사 M 선배가 눈에 띄게 화난 표정으로 오피스에 입성했다.


적어도 우리 오피스에서는 M 선배와 가장 친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나조차도,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다른 연구실 후배들이 있었다면, J후배의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말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11시를 넘어가는 늦은 밤. 처음으로 M 선배의 불호령을 보았다.


주된 내용은 석사 디펜스를 준비중인 J 후배의 태도 및 성실함에 대한 것.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혼내려고 작정한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J 후배를 평소에 아끼고

졸업을 도와주고자 했던 M 선배이기에.... 손을 놓은 듯 멘탈이 나가버린 J 후배에게 실망한 듯 했다.

더군다나 이번 주 내로 디펜스 심사 위원을 확정해야 했지만, H 기업 입사 시험 준비로 이를 등한시 했으니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던 M 선배가 악역을 자초한 것 같았다.


잠깐 우리 연구실의 가계도를 언급하자면

최고참 S 선배 - 천사 M 선배 - 필자 - 내 오른팔 H 후배 - J 후배 / K 후배 / L 후배
그 밑으로 석사들이 존재하는데, H 후배는 이미 박사 2년차다.


그렇다... J/K/L 후배 위로 H 후배 밑으로는 박사가 존재하지 않으며 (적어도 우리 팀에서는)

세 후배 모두 이번 학기 졸업 및 회사를 목표하고 있다.


나와 H 후배는 대놓고 이를 서운해 했지만... 그와중에 신경써주며 이해하려 했던 M 선배가

마침내 J 후배의 안일함에 폭발한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다.


자세히는 묻지 않았지만, K 및 L 후배는 디펜스 심사 위원을 정한 반면,

J 후배는 랩미팅 발표는 커녕 심사 위원조차 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러한 안일한 태도에 M 선배는 J 후배의 태도가 너무 답답하였고...

"너가 이번에 졸업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딴 식으로도 졸업할 수 있다면 여태 열심히 준비한
다른 석사들이나, 내 석사 기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내 기억속의 문장이라 의미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라고, 내 기준 M 선배가 절대 하지 않을만한 호통을 보았다.


직후, M 선배는 퇴근하였고... 나 또한 30분 간 정적에 휩싸이다 도망치듯 퇴근하였다.


독자님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J 후배가 너무 안일하게 산 것 아니야? 나같아도 화 낼만 한데"


그러나 J후배의 노력을 평가하기 전, 대학원의 이 기형적인 구조가 나는 가장 큰 원흉이라 생각된다.


주제를 교수님 혹은 선배에게 받을 수 있는 랩, 자율적으로 방목하는 랩이 있다면

두 랩 중, "정답" 이라 여겨지는 랩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내 생각은, 개개인 성향에 따라 정답은 다르다.


주어진 주제에 순응하여,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방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아야 스스로 재미있는 분야를 찾고, 주제를 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는 누가 맞고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개개인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대학원은 연구실, 즉 지도교수님이 누군지에 따라 이러한 특성이 확정되고

개인의 성향은 연구실의 분위기에 맞춰야 한다.


당연히 모든 교수님들께서 학생 하나 하나에 맞춘 솔루션을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들은 하늘, 아니 천외천이니

하늘이 비를 내리지 않는다 할지언정 무작정 기우제를 지내는 것 보다는 우물이라도 찾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우리 랩은 교수님이 자유롭게 방목해주시고, 선배들과 조율하여 자유롭게 주제를 탐색할 수 있는 연구실이고

나쁘게 말하면 일절 터치하지 않는 방치형 랩이다. (하다못해 출퇴근 시간, 요일마저 말이다)

필자는 이러한 랩이 너무 성향에 걸맞을 뿐더러,
중학교 이후로 억압된 환경보다 방치된 환경에서 두각을 드러냈기에 연구실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 또한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그 중 J 후배가 특히 연구실 성향을 어려워 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타 후배들의 석사 졸업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스스로 판단하기에 우연히 찾은 주제 하나가 너무나 잘 진행되었고, (초심자의 럭키 펀치라 할 수 있다)

어이없게도 내 바로 위, 위윗 선배들은 너무나 큰 우산으로써 교수님으로부터 방패이자,
교과서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게임 가챠 운 빼고는 복을 타고나긴 했다)

심지어 후배마저 내 오른팔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고, 같이 연구를 즐길 수 있으니

이런 축복받은 환경에서 어찌 고작 석사 졸업이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한명, 두명... 여러 후배들의 졸업을 지켜보며 내 졸업이 얼마나 편했는지 느낌과 동시에

대학원, 연구실의 기형적인 구조에 너무 실망을 거듭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교수님의 성향이 동일할 수 없고, 학생들이 적응해야 한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K 대학원의 모두는 넘치는 가능성을 지니는 수재들의 집합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J 후배도 K' 대학교의 수석이자, 상당히 비상한 머리, 꼼꼼한 성격으로

회사에서는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 확신하지만....
연구실 성격과 맞지 않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개화할 수 있는 인재들이
저렇게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어쩌면 이건 스스로에 대한 살짝의 분노일지도 모른다.

J 후배에게 약 1년 반 전에 같이 진행해보자고 주제를 주었는데

그 주제는 처참히 실패했고... 이후에는 그렇다 할 주제를 주지 못했다 (나 살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똑똑했으면, 더욱 재능이 있었다면 내 후배들이 행복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천재도, 수재도, 인재도 아닌 그저 노력으로 범재들의 뒤꿈치를 따라가려는 둔재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고평가 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평가하는 나의 적나라한 지식은 저 수준이고

이러한 나의 실력으로 인해서 내 후배들, 주변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이 항상 슬프다.


내일 오전은 랩미팅이다. 아마 J 후배는 내일 교수님께 상당히 혼나겠지


다른 연구실의 우수한 박사들 실적 소식이 들려올 때 "멋있다" "부럽다" 라고 생각할 뿐이지

"나도 저 인생을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내 인생을 10000번 태어나도 지금 삶의 가능성은 10번 이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나 자신의 연구실 동료,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멘토로써 가능성의 활로를 제시할 수 있는

그 천재들의 삶이 오늘은 조금 부러운 것 같다.


이렇게 얘기해도 결국 J 후배는 잘 졸업할 수 있을 것이고, 회사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대학원 뿐 아니라 앞으로 회사 생활에서도

내 후배가 J처럼 힘들어 할 때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지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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