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 May 03. 2023

애착, 아니 집착인형에 관하여

삼둥이 첫째의 문제적 야캉이에 대한 이야기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야캉이는 삼둥이 첫째의 애착, 집착인형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야캉이를 만난 건 4년 전 쯤이었던 것 같다. 신랑과 둘이 이마트 가판대에 높이, 그득 쌓여있는 폭신한 인형들을 봤다. 평소 거의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편인데 남편이 저런 거 한 번도 안 사줘 봤으니까 하나씩 사주자고 했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인형 세 개를 집었다. 문제의 야캉이 외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 갈색의 인형 두 개를 더 집어왔다. 폭신했고, 정말 부드러웠고, 제품 이름도 인형이 아니라 쿠션이었다. 딱히 특징 없이 생긴 인형들이고, 그중에 문제의 야캉이는 유독 맹해 보였다. 귀엽고 순해 보이는 프렌치불독 강아지 인형이었다.


  첫째가 그 프렌치불독 인형에게 어떻게 정을 느끼고, 그리하여 애착인형으로 간택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도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그 인형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게 아니기 때문에 강렬한 기억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첫째는 그 인형을 만나자마자 “꺅! 사랑해!!! 널 나의 애착인형으로 삼을 거야! 널 야캉이라고 부르겠어!” 그러지 않았던 거다.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아이 품에 그 인형이 늘 스마트폰처럼 달라붙어 있었고, 또 몇 달이 지나니까 서투른 발음으로 “야캉, 야캉.”거리고 있던 거였다.


  야캉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약하다는 의미이다. 약하기 때문에 야캉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다가 지나고 보니 급 울컥한 이름이다. 첫째는 둘째, 막내에 비해 온순하고 유순한 편이어서 늘 동생들한테 치인다. 한 마디로 동생들에 비해 약하다. 무난하다고 생각했지만 커 갈수록 사실은 예민한 아이구나 느끼는 아이인데, 자신의 애착인형 이름을 야캉이라고 지었다니, 애는 별 생각 없을 텐데 혼자만 울컥한 포인트다.


  그러한 성격에다가 평소 놀 때를 살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로봇과 블록을 가지고 몇 시간씩 놀 수 있는 아이다. 유명한 블록도 아닌데 그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은 집에서 이미 5세트를 구입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로봇의 경우도 질리지 않고 몇 시간씩 놀며, 몇 년째 좋아한다. 그 아이의 놀이 성향과 애정 성향이 그런가 보다. 그것이 그렇게 장기 연애와 같은 애착인형의 탄생을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둘째와 막내에게도 각각 뿡뿡이, 젤리라는 인형이 있으나 그저 그 아이들의 전용 인형일 뿐이지 애착인형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어쨌건 야캉이의 프로필은 이렇다. 야캉이는 아기 프렌치불독이며, 여자 강아지이다. 야캉이는 거의 매일 생일이며(“엄마, 오늘 야캉이 생일이야.” 이것이 첫째가 매일 하는 말이다.), 언제나 한 살이다.


  지독하게 야캉이를 사랑하던 시절은 네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야캉이라고 명명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 시절에는 어린이집에도 야캉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 몇 번 가지고 갔다. 그러나 어린이집에서 야캉이를 잃어버린 적이 두어 번 있어서 가져가는 걸 금지했더니 등원할 때마다 눈물의 작별을 하곤 했다.


  그렇다. 야캉이는 잃어버린 적도 몇 번 있다. 그래서 처음 산 이후 몇 번 구매했었다. 프렌치불독 바디쿠션으로 검색해서 s사이즈를 구입했는데, 오호, 통재라! 현재는 그 제품이 판매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제품이 판매되더라도 사봤자 그 아이는 야캉이가 아니다. 야캉이라고 명명한 이후, 그리고 몇 달을 함께 한 이후로 이제 같은 제품이어도 그건 야캉이가 아니다. 


  야캉이에게는 몇 년을 함께 하며 생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고, 원래 흰색이었다고는 누구도 알 수 없는 특유의 꾀죄죄함이 있고, 아이가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있다. 이제 같은 제품이 와도 그건 야캉이 오빠거나 동생, 친구이지 야캉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삼둥이들이 세트로 취급되어 첫째를 둘째 이름으로, 둘째를 막내 이름으로, 막내를 첫째이름으로 잘못 불러도, “아닌데요! 저 막낸데요!” 하고 발끈하는 것과 같다. 야캉이는 고유하며, 오롯하다.


  작년에는 야캉이 분실사건도 있었다. 내가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시립도서관을 갔다가 30분 거리에 있는 시댁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딱 중간인 15분쯤에 첫째가 “엄마, 졸려. 나 야캉이 줘.”라길래 내 가방을 찾았더니! 이런 야캉아! 어디 간 거야! 갑작스런 아이의 쇼크! “나 이제 야캉이 없이 사는 거야?????????? 으아아앙~~~~~~~~.” 그에 이은 나의 분노. “그러니까 가지고 다니지 말랬좌나!!!!!” 아아, 아이의 절망과 나의 분노가 차 안에 가득 차고, 야캉이의 중요성을 아는 둘째와 막내의 불안도 같이 퍼졌다. 


  차를 세우고 야캉이가 헤매고 있을 만한 곳을 생각하다, 시립도서관 유아자료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근무하는 분이 웃으면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네, 맞아요. 까맣고 흰(사실은 꾀죄죄한 회색), 귀여운(사실 좀 맹한). 네, 그 인형 맞아요.


  그리고 그걸 남편이 찾으러 갔는데, 남편 말로는 직원이 야캉이의 발을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서 건네줬다고 한다. 마치 더러운 걸 전해주듯 말이다. 


  그러니까 현재도 야캉이는 잘 때 함께 있어야 한다. 도서관 사건 이후에도 여러 번 누누이 밖에는 가져가지 말자고 해서 거의 외부에는 가져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외출할 때 가끔씩 너무 가지고 가고 싶다고 하면 가져가되 차에 두고 내린다. 또 잘 때는 필수라 1박을 하는 여행 시에는 가지고 간다. 시댁에 두고 와서 밤에 오직 야캉이를 데리러 차를 몰고 왕복 한 시간을  운전한 적도 있다. 


  잘 때만 필요한 건 아니다. 혼나거나, 억울하거나, 분할 때 첫째는 갑자기 호위무사를 부르듯 “야캉이~~”하고 부른다. 그리고 그 인형을 집고, 왠지 모르지만 야캉이 코와 자신의 코를 맞대고 냄새를 맡는다. 거의 흡입수준으로 냄새를 맡는다. 


  또 야캉이는 옆구리 같은 곳이 몇 번 찢어져 시어머니의 집도 아래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리고 세탁할 때는 언제 야캉이가 세탁기에서 나오냐며 안달복달 한다. 건조기에서 따뜻하게 나온 야캉이를 만지는 첫째는 행복에 겨워 한다.


  “엄마, 내가 예뻐, 야캉이가 예뻐?”

  “당연히 네가 더 예쁘지.”

  “(분노에 차서) 아니야!!! 야캉이가 더 예뻐!!!!”

  뭐여, 내가 뭘 잘못한 거여.


  아이의 카시트 옆 가방에 야캉이를 놓고 운전한다. 아이는 꾸벅 잠이 드는데 눈을 감은 채로 오른손을 휘저어 가방에서 야캉이를 꺼낸다. 그리고 코를 부비고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진다. 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어쩌면 야캉이는 천과 솜으로 이루어진 쿠션이 아닐지도 모른다. 야캉이의 몸 속에는 첫째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어루만져주는 마법가루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 마법가루는 첫째가 야캉이를 만지고 사랑할수록 더욱 채워지는 것 같다. 


  정말 야캉이에게 고마워해야 할 건 어쩜 나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두 손이 둘째, 막내에게 가있던 어느 날 야캉이가 첫째의 손을 잡아줬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애착인형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반적으로 몇 살부터 몇 살까지 좋아하는지는도 모르겠다. 8살인 지금이면 애착인형을 좋아할 나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뭐 법으로 정해졌나. 마흔 세살 나도 가끔은 포근한 인형을 안고 싶은걸.  


  어느 날 첫째가 더 이상 야캉이를 안고 자지 않아도 될 때, 야캉이를 좋아하는 걸 좀 부끄러워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아이는 내 손을 잡는 것도 쑥쓰러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와 야캉이는 좀 섭섭하고 속상할 수도, 그리고 뿌듯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엽기 잔혹 그림책 <밥 안 먹는 색시>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