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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Apr 03. 2023

초딩 입학 일주일만의 사건

삼둥이들의 초딩 적응기

삼둥이 : 2016년생, 첫째(남아), 둘째(남아), 막내(여아) 


  입학 일주일만에 둘째가 같은 반 아이한테 배를 맞았다. 저녁에 얘기하다 둘째가 큰 사건을 말하는 것도 아닌 말투로 같은 반 아이한테 배를 강하게 두 대 맞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잠시 그를 인터뷰해보자.     

나: 맞기 전에 둘이 싸우는 중이었나?

둘째: 아니었다. 그냥 얘기하고 장난치는 중이었다.     

나: 맞았을 때 어땠는가?

둘째: 갑자기 맞은 거라 너무 놀랐고, 정말 세게 맞았기 때문에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나: 때리고 나서 너는 어떻게 반응했는가?

둘째: 바로 나도 한 대 때렸다. 근데 내가 때린 것은 한 대였고, 걔 보다 약하게 때렸다.     

나: 그 아이의 이름은 무엇인가?(아이들은 학기 초라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다.)

둘째: 모르겠다. 이름을 보긴 봤는데 이름에 모르는 글자가 있었다.     


  통탄할 노릇이다. 둘째는 작년 일 년간 내가 한글을 가르쳤지만 삼둥이 중 제일 낮은 성취를 보였던 아이였다. 세상에. 한글을 몰라서 때린 아이 이름도 알 수 없다니. 눈물.     


  그래도 둘째보다는 한글에 능통한 같은 반인 첫째와 막내에게 물어보니 그 애들은 사건을 목격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이름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가 심상한 어투로 말하기도 했고, 피해자인 둘째가 가만 있는데 내가 부르르 화를 낼 수도 없고,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게 입학하자마자 얻어맞은 거라 화가 안 나지는 않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그런데 때린 애 이름은 알 수도 없고.       


  일단은 다음 날 학교 가서 첫째와 막내에게 둘째가 누구인지를 말하면 그 애의 이름은 알아올 것. 그것만 지시했다. 나의 생각은 그랬다.

- 둘째를 때린 아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때린 것인지, 장난인지 아직 알 수 없다.

- 그러므로 그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도 판단할 수 없다.

- 나는 내 자식의 의견만 들은 것이므로 객관적 상황을 알 수 없다.

- 하지만 다시 한 번 이런 일인 생긴다면 좌시할 수 없다.

- 그러므로 담임선생님과 상의하는 것은 사건이 재발하면 하겠다.     


  아이가 누구에게 맞는다. 그 문제에 대한 내 의견이 옳은 육아에 맞는 건지, 사회적 기준에 맞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삼둥이에게 늘 얘기한 것은 그거였다. 선빵은 안 된다. 그러니까 네가 누구를 먼저 때리면 안 된다. 그러나 네가 맞고나면 그건 참으면 안 된다. 맞고만 있으면 안 된다. 맞고 나면 때려라.      


  앞서 말한대로 담임선생님과 상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이 사건과 무관한 일로 담임선생님이 오후에 전화를 하셨다. 나는 전화를 받은 김에 그 얘기를 했고, 오잉? 선생님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 둘째는 막내에게 자기를 때린 애를 알려줬고, 막내는 둘째를 데리고 선생님에게 갔다고 한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둘째를 때린 애를 불렀고, 선생님이 판단하시기에도 의도성을 가진 장난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때린 애에게 둘째에게 사과하라고 하셨고, 둘째에게는 어떻게 하길 바라냐고 물으셨다. 둘째는 말했다. 자신은 어제 맞고 나서 정말 놀랐고, 아팠고, 불안했다고. 그래서 자기를 때린 애가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 아이는 둘째가 원하는대로 말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면 내가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내가 한 일은 전 날 얘기를 들은 것밖에 없고, 뭐 나머지는 애들이 해결한 셈이다. 왜 맞은 날 바로 선생님한테 얘기 안 했나 했더니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 수업 때 벌어진 일이라 담임선생님은 없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둘째에게 말했더니, 둘째의 분노포인트는 다른 것이었다. 그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자기는 팔을 흔들며 둘째 쪽으로 걸어갔는데 그 팔이 닿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엄마, 팔을 흔들면서 걷는데 두 번이나 때렸다는 게 말이 돼! 거짓말했어!”

  앞니 빠진 아이가 침을 분사하며 분통을 터뜨린다.      


  어쨌든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역시 해결사 막내가 나서서 이름을 보고, 선생님한테 둘째를 데리고 갔단다.

      

  아이는 두 대 맞았다. 내가 직장에서 만난 지 일주일 된 동료와 얘기하는 도중에 복부를 두 대 맞았다고 생각해 보자. 둘이 싸우는 중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싸우는 중에 때려도 말은 안 되지만 말이다. 둘째 말대로 아프고, 불안하고, 놀랄 일이다.      


  역시 늘 즐겁기만한 학교 생활이란 없는 것이다. 상처 입지 않고 크기는 힘든 법이다. 그저 그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같이 흥분하고, 어떤 날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또 많은 날은 지켜보고 해야 하는 것이 나의 몫이겠지. 깊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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