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본 애착인형의 특징은 무조건 만지면 차암 포근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게 하는 재질이라는 것이다. 애착인형 특유의 재질이 있다. 애착인형의 재질이 플라스틱 등의 딱딱한 소재인 경우는 내가 본 아이들 중에는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애착인형의 종류는 참 많다.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마흔이 넘은 나도 하나 갖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 생각에 애착인형은 ‘이게 너의 애착인형이란다.’라고 쥐어 줘서 그게 애착인형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아이의 간택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는 자기 나름의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그러나 어른은 이해하지 못 하는-애착인형을 간택한다. 자기 맘에 드는 냄새, 손에 쥐었을 때의 그립감, 안았을 때의 감촉, 본인 취향의 디자인과 색감이 기준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당연히 비싸다고 유명하다고 질이 좋다고 꼭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애착인형의 선정 시기와 유통기한은 모르겠다. 우리 애들 기준으로 처음 선정한 나이는 3살 정도였고 유통기한은 첫째 기준으로 봤을 때 초1인 현재도 여전히 짱짱하게 유지 중이니까 말이다. 쟤 설마, 중학교 가서도 인형 안고 자려나….
어쨌든 다각적인 면에서 아이의 마음에 쏙 든 애착인형, 애착이불 등은 정말 아이의 단짝 친구가 된다. 너무 사랑하는 사이라 둘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으며, 자칫 떼어놓을라 치면 더욱 사랑이 깊어져버린다.
여기서 내가 줄 하찮은 조언 하나는 아이들이 간택할 때 쯤에 덩치가 큰 인형을 그 앞에 두지 말라는 것이다. 왕이 세자빈을 간택하듯 엄정한 기준으로 아이들이 애착인형을 선정할 때 만약 아주 큰, 어린이 키는 될법한 인형을 아이가 애착인형으로 선정한다면? 그래서 그것이 애착인형을 넘어서 집착인형이 된다면? 그런데 아이의 성향이 불안도가 높아 좀 커서도 그 집착인형 없이는 집 밖을 못 나선다면?
요즘 초등학생이 된 삼둥이들이 하교할 시간에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근데 지금 두 달째 내 눈길을 끄는 엄마가 있다. 그 엄마는 어린이 키는 됨직한 토끼 인형을 항상 안고 있다. 그 엄마는 나처럼 체구가 작은 분이라 인형 키가 본인 키의 3분지 2는 된다. 참 눈물겨운 장면이다. 아이는 아마 그 인형을 하교하자마자 안아야 되리라. 요즘 지나가며 보니 그 아이와 그 엄마는 등교 때도 그 인형을 아이가 안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 다행이라고 할 건 아이가 그걸 학교 안으로 데려가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어휴.
그렇다. 너무 커다란 인형이 애착인형이 될 경우 당신은 여행 갈 때 그 인형을 위해 캐리어 하나를 할애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인형을 안고 초등학교를 배회하는 조금 쑥스러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가끔 이십 년쯤 된 애착인형이 ‘이제 날 놔줘!’라고 소리 지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볼 때가 있다. 인형은 구질구질하고 대체 원래 모습이 뭐였을까 짐작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사진을 보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 고 작은 인형으로 아이가 받았을 안정과 평화로움이 값지고 애틋하다. 그 인형의 주인공을 모르는데도 말이다. 인형은 자신의 보송보송함으로 무섭고 겁먹고 황량한 아이의 마음을 보송보송 말리고 말랑말랑하게 해준다. 애착인형이며 마법인형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