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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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라는 시집을 읽었다.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지만, 내 마음에 큰 울림을 남긴 진앙은 다름 아닌 시집의 끝에 자리한 '시인의 말' 파트였다.
안희연 시인이 직접 겪은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겪은 경험담 형식으로 적힌 글이었다.
한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렸다며 우는 것을 보았고, 그 아이는 엄마를 다시 만나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은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아이에게 섣부르게 위로도 건넬 수 없는 상황임을 아는 작자는, 말해주는 것 대신 아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상상을 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 언덕엔 마음을 기댈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않냐며, 그 언덕을 내려왔을 때는 충분히 운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니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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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은 모두 '흔들림'을 경계한다.
무의식 중에 나를 더 완전하고 단단한 사람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본능이다. 나 또한 그렇고, 내가 지금껏 봐왔던 대부분이 그러했다.
그러나, 가끔 눈길을 계속 머물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마음껏 흔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마음껏 흔들릴 수 있도록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 그 둘은 마치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해 주는 것처럼 마음껏 흔들린다.
두 개의 흔들림이 한 곳으로 모일 때는, 춤이 된다.
인간은 흔들림을 경계하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흔들리는 것을 볼 때, 비로소 부담감을 내려놓고 마음껏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의 흔들림에 익숙해지고 나면,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묘한 안정감을 느낀다. 흔들림을 불안함이 아닌 안정감으로 느끼는 상태. 이런 걸 사랑이 성숙된 형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 사실을 꿰뚫은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 '언덕'이 되어주길 바라는 심정에서 시집을 출간했다고 한다. 혼자서는 도저히 마음 놓고 흔들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의 언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시인의 이런 사려 깊은 마음에 혜택을 얻은 수혜자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느샌가 시 한 구절 한 구절 안에서 마음껏 흔들리고 있었다. 애써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들을 마음껏 떠올려도 보고, 또 건강하게 해소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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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그런 언덕 같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내 위에서 누군가가 마음껏 흔들리고, 또 마음껏 웃고 마음껏 행복해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언덕 위의 우리를 목숨 다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 속에서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건 다름 아닌 언덕이다.
내가 그 사람의 언덕이 되고, 그 사람이 나의 언덕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여름 언덕 위에 우뚝 선 두 사람을 목숨 다해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