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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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개봉했던 영화 ‘청설’
그저 멜로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었고, 포스터와 예고편의 색감이 눈에 띄게 마음에 들어 정했던 영화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손동작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대부분의 장면들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이질감도 들고, 배우들의 목소리가 상영관에 울려 퍼지지 않으니 괜히 적막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번뜩 들었던 생각이 있다.
‘영화의 모든 중요한 장면 속 대사들이, 배우들의 목소리가 아닌 자막을 읽는 내 마음속 목소리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배우들이 직접 대사를 말하면, 배우 특유의 억양과 목소리 톤으로 인해 ‘고정된 감정’만이 전달된다. 물론 배우의 역량에 따라 고정된 감정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 충분한 울림을 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조금 달랐다.
배우는 수화를 통해 마음을 전달만 할 뿐, 대사는 전부 자막으로 띄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막을 속으로 소리 내서 읽는다 스스로.
결과적으로, 그 장면 속 대사들은 전부 우리 제각각의 목소리를 통해 ‘유연한 감정’으로 전달되게 된다.
예를 들어, “좋아해요” 라는 단어 하나를 수화로 이야기해도, 그 대사는 자막을 통해 우리가 속으로 읽게 되고, 결국 우리가 스스로의 목소리로 “좋아해요” 라고 고백했던 순간들을 오버랩시킨다. 아이러니하게, 배우들의 이야기가 더 명확하게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의도했건 아니건, 수화 장면들은 내 마음속에 숨어있던 사랑의 감정들을 꺼내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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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영화는,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 중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그 마음을 증폭시키는지 깨닫게 만들었다.
목소리가 없다 보니 배우의 눈과 표정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보통 속 깊은 마음을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잘 쳐다보지 못하지 않나. 심지어 그 마음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배우들은, 수화를 더 잘 보기 위해서인지 서로의 표정을 주목하고 서로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덩달아 보는 우리도 그들의 감정이 표정에서 드러나고 있음을 느낀다.
익숙함에 빠져 잊고 살아가고 있었던 사랑의 여러 측면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멜로의 역할을 다 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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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참 신기하다.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누가 번역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마음속 목소리만으로도 알아챌 수 있다.
내 마음속에 울리는 음성들이 내 언행들을 조작해 사랑을 전달하기도 한다.
극 중에서도, 용준이 여름을 처음 보고 반한다. 수영장을 관통해서 용준에게는 여름 한 명만 특별하게 보인다.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서로 어색한 상태에서 계속 눈을 마주치기만 하는데도 간질간질거리는 감정이 느껴진다.
너무 신기하지 않나?
말없이도 이렇게나 선명하게 오갈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게. 사랑은 참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