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는 것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내가 죽기 일주일 전 #4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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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꾸는 행위가 그들의 관계에서 어떠한 의미로 작용했는지, 마지막 회가 되어서야 드러났다.

이름을 바꾸는 선택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영원히 껴안을 수 있는 효시가 되어주었다.

작 화로는 6편, 작 중으로는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희완이 지난 5년간 혼자서 바꿔내지 못했던 것들을 바꿔내고 만다 람우는.

"그 때 내가 너를 혼자 올려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후회 하나로 시간이 멈춘 듯이 살았던 희완은,

아이러니하게 람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후회를 접는 일에 성공한다.

그토록 람우를 원했던 그녀의 시간은, 람우가 사라지고 나서야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희완에게는 결국 '죽음'을 택하는 것보다,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 더 두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 이유 또한 '내가 사랑했던 것들' 때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희완은, 람우의 모든 것을 기억하기로 한다.

희완이 기억하고 있는 한, 람우는 그 안에서 살아있는 것과도 마찬가지니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고문을 끝내고 나니, 마음껏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가능해진 희완은, 람우와 희완을 동시에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향한 원망이 아니라,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는 것이,

희완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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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아마 전부 람우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남겨진 사람은 더 잘 살아가길 원하는 마음]

람우의 마지막 멘트는 마치,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들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희완과 같은 태도가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떠나간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나를 사랑하는 것]

희완의 마지막 전시는, 떠나는 사람을 가장 기쁘게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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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과 그리움은 한 끗 차이이다.

미련은, 남겨진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그리움은, 남겨진 사람이 더욱 살아가도록 만든다.

이 드라마가 택한 이별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미련에 잠겨 살던 한 사람이, 그 좋았던 기억 하나 버리지 않은 채로 그리움에 편승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렇듯, '그리워하는 것'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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