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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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엔 정말 아무것도 안 샀는데, 왜 또 카드값이 이렇지?"


이 말은 이달의 고정 멘트가 되어버렸다. 나는 분명 지름신을 물리쳤고, 장바구니를 비웠으며, 쿠팡 앱을 삭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카드 명세서는 어김없이 나를 배신한다. 어딘가 이상하다. 소비는 줄인 것 같은데, 왜 숫자는 늘어나 있는 걸까.


돈은 사라졌는데, 방 안은 점점 좁아진다. 언제, 어떠한 동기로 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어느샌가 정리할 물품들을 담을 박스를 조립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박스에 담길 물건들만 합해도 10만 원은 족히 넘을 텐데, 대체 언제 이만큼이나 사들인 걸까, 오늘도 나는 소비의 착시를 겪는다.


소비는 무언가를 소모해서 무언가를 사들이는 일인데, 이 행위가 최종적으로는 없어지는 일인지, 쌓이는 일 인지 이제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치킨을 시켜도, 허기는 사라지지만 살은 남는다던가, 지갑은 얇아지지만, 택배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다던가, 소비는 눈에 보이지 않게, 혹은 너무 잘 보이게, 우리 주변에 계속 흔적을 남긴다.


소비가 정말 무서운 건, 물건만 축적되는 것이 아닌 '기억까지 쌓인다는 점이다. “이거 샀을 때 기분이 좋았는데". 그때 유행이었지? ”그때는 비쌌는데 지금은 할인하네" 와도 같은 말들로 소비는 의미를 덧입고, 감정을 품고, 생각보다 큰 비중으로 내 삶 속에 자리 잡는다. 소비는 단순히 돈을 쓰고 끝나는 일이 아닌, 이후에 많은 것들을 산더미처럼 남기는 일이었다.


소비는 결국 사라지는 것도 맞고, 축적되는 것도 맞다. 돈은 줄었지만 물건이 생기고 공간은 좁아졌지만 기억은 쌓인다. 우리는 '비움을 통해 '채움'을 경험하는 모순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