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by 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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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우울한 건 아니었는데, 바닥에 양말이 4켤레 굴러다니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접지 않은 빨래가 쌓여 있고, 컵은 두 개인데 물은 절반씩 채워져 있다. 창문은 닫혀 있고, 분명 환기를 방금 한 것 같은데도 남자 방에서 날 법한 향이 난다. 딱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방이 나보다 먼저 지쳐 있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면, 방은 참 솔직하다. 말도 안 하고, 눈치도 없는데 이상하게 내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작 주인은 피곤하다는 말을 내뱉지도 않았는데 의자 위에 옷을 걸어놓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 바닥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한다. 어쩌면 거울 속 얼굴

보다 방 안 풍경이 더 정확하게 내 상태를 알려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억지로라도 청소를 한다.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기분이 좋아져야 해서 치우는 날이 있다. 쓰레기를 버리고, 먼지를 닦고, 침구를 털어내다 보면 아주 조금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청소기가 답답한 내 마음을 다 빨아들여주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정리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기분은 준다. 반짝이는 바닥을 보면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누군가는 정리된 공간에서야 비로소 쉬고, 누군가는 어질러진 공간에서야 비로소 자신을 본다.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방바닥에 양말과 수건이 어질러져 있다면, “요즘 무슨 일 있어?”라고 살짝 묻는 것도 좋은 센스가 될 것이다.


요즘도 내 방은 조금 어질러져 있다. 그러니까, 슬슬 치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를 돌보는 방법 중 하나가 청소라면,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