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를 배운다. 독일어라고 하면 다들 der des dem den을 떠올리며, 거기에서 나아가 더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그 시절 우리는 제2외국어로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웠으며, 이유도 모른 채 배웠고 더 이상의 흥미를 갖지 못했고 그렇게 잊었다.
그 후의 세대들은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며, 우리가 일본에니메이션에 열광해서 일본어를 배우고 싶다면 독학이었듯
요즘 혹시라도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중고생이라면 독학을 해야 한다.
독일어를 배운다. 정확하게는 그냥 학부수업을 들어간다.
무용하고 쓰임새 없을, 한강의 희랍어 시간 같은 정조로 독일어를 합니다. 독일어를 배워 어디에 쓰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말들, 희랍어나 라틴어 처럼 멀고 가 닿을 일 없는 것 같은 아득함으로 독일어를 배웁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 주인공과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남자가 나오는 소설 희랍어 시간.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라고 자신의 묘미에 써달라고 보르헤스는 요구했다.(희랍어 시간의 첫 문장)
칼레 파 타 칼라.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어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고결한 것이다.
세 번역 모두 그르지 않은 것은, 고대 희랍인들에게 아름다움과 어려움과 고결함이 아직 분절되지 않은 관념이었기 때문이다. 모국에서 '빛'이 처음부터 밝음과 색채라는 두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소설(영화도 있음)을 보면, 고대 라틴어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이미 죽은 언어를 사랑하는 사람.
물론 로마인들도 물건을 사고 팔았으며 욕도 했다. 하지만 그건 달랐다. 그가 라틴어 문자응ㄹ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언어는 온갖 소란스러움에서 떨어져 있었고, 확고부동하며 아름다웠다. 그레고리우스는 라틴어를 죽은 언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