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 얽힌 이야기 한 조각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꼭 필요하지 않은 원두를 사고 말았다.
기억의 매개체가 되는 과거의 경험은 개인의 기억이다. 기억은 대개 음식과 관련된 경험이 많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결국은 먹는 게 절반이고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한 박찬일 요리사의 말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오즈비. 서귀포 버스터미널 근처의 커피숍이다. 제주도에 처음 드나들기 시작하던 때, 처음으로 간 커피숍이었다. 그 당시에는 드물던, 그것도 커피의 불모지 같았던 제주도에 있는 로스터리 카페였다. 커피가 인상 깊도록 맛있었고 원두를 볶는 솜씨도 좋았다. 원두도 다양했다. 나의 커피욕구를 두루두루 채워주었다. 그 후에도 오래도록 드나들었다. 그러다 서서히 가는 횟수가 줄었는데 이는 내가 더 이상 제주 여행자가 아니라, 제주도에 거주하는 생활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생활인은 생활반경이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큰 맘을 먹지 않으면 멀고 먼 서귀포에 가기 어렵다. 정말 생활하다가 여행이라도 하듯 마음먹어야 갈 수 있으니 생활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커피가 맛있는 집이 많이 생겼다.
추억의 한 자락으로 물러나 있던 오즈비.
주말 서귀포에 여행처럼, 시간 내어 갈 일이 생겼다. 오즈비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외관을 보니, 인테리어가 바뀌어 있었다. 들어가 봤다. 그때의 그 사장님 부부가 계셨다. 도시락처럼 내가 싸간 커피가 있어, 매장에서는 라떼를 한잔 주문해 마시고 원두 두 봉지를 샀다.(실은 얼마 전에 캡슐커피머신이 생겨서 원두가 필요하지 않았다.) 자꾸만 시간이야기를 하면 궁색하지만 내게 맞지 않는 캡슐커피머신이 생길 기회를 거절하지 않고 간편함을 즐기는 것도 드립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데 커피는 필요한 때가 잦아지기 때문이었다. (내가 선물 받은 커피머신은 돌체구스토, 육지집과 기종이 달라 산처럼 쌓인 캡슐을 가져오지 못하는 게 유감이다. 결국 내돈내산이다. 캡슐값이 몹시 아깝다.)
오즈비를 들러 커피를 마시다 생각하니, 10년 전 그리고 제주도를 미친년처럼 와 있을 수밖에 없었던 크레이지 했던 젊은 날이 생각났다. 결국 추억과 기억이다.
커피는 탄자니아와 온두라스를 골랐다. 집에 와 늦은 오후임에도 갈아서 드립을 했다. 깊은 맛을 기대한 커피에서는 덜 익힌 듯한 맛이 났고, 산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 커피에서는 쓴 맛이 났다. 의외의 맛에 놀랐다.
*김현남(2024)< 제주 음식에 대한 인문학적 탐구 -신유물론을 바탕으로->, 제주대학교, p.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