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항구

by 어떤 바람


실패한 디스코.

J 때문에 생긴 추억의 일화다.


학부 시절, 문학회 선배였던 J는 우리 학번 사회과학세미나, 미학세미나의 간사 중 한 명이었다.

치열한 논쟁이 오가던 모임을 마치고 단골 호프집에서 치기 가득한 뒤풀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가 흘러나왔고 모두가 분위기에 취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오정 기질이 다분한 나는 순간 들리는 대로 내뱉었다.

"실패한 디스코?"

우하하하하하 한순간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분명 취하지 않았는데 무언가에 홀려 취했었던 것도 같다.


그 실패한 디스코 일화를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J는 생각을 풀어내는 능력이 강했고 논쟁에 뛰어났으며 감성도 풍부했다. 게다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정한 성정을 지닌 선배였다. 물론 엉뚱하고 독특한 매력도 있었지만, 웅숭깊고 허상 가득한 1학년 새내기였던 나와는 참 다른, 멋진 선배였다.

당시 우리는 갓 스무 살 넘긴 어린 청춘들이었음에도 세상을 바르게 보는 눈과 정의, 평등, 자주,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한 소임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누었다. 그리고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날카로운 합평회를 했고 많은 것들을 함께 했다.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2024년의 여름.

나는 긴 휴가를 내어 어쩜 실패한 디스코가 앞날의 전조였는지 내 마음의 고향이 되어버린 샌프란시스코로, J는 14년 전 정착한 보스턴에서 서울로 방문하여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조우했다. 간혹 모임이나 대소사에서 만나기도 했지만 J와 개인적인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솔직히 기대도 조금 되었다.

J와 나는 반갑게 껴안으며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지나온 인생과 사랑, 철학, 사회, 문학, 예술을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과 J의 고양이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땅거미 내려오는 해 질 녘을 걸었고 무더운 공기를 가누며 밤한강도 하염없이 걸었다.


J는 고학력 사회 구성원이 대부분인 보스턴에서 학사 졸업인 자신이 가장 가방 줄 짧은 무지한 자라고 농담을 했다. 미동부에서 아이를 키우며 한글학교 교재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미술작품 전시를 계획하여 큐레이터도 하며 지냈다고 했다. 기계치인 자신은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한다며 드넓은 미국에서 운전도 하지 않고 모든 생활 반경을 거의 걷거나 간간히 버스나 우버를 이용해 지낸다고도 했다. 그리고 마음이 힘들 땐, 찰스 강변과 허드슨 강가를 걸으며 바람을 삼켰다고도 했다.

나이 먹은 우리에겐 미국이라는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없는 소통의 교집합이 있다. 미국의 문화와 생활 속에 스며든 일상을 교감할 수 있는 그 무엇. 그건 경험하지 않고는 맞장구칠 수 없는 것들이기에 개인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다양한 개성을 존중한다. 한국 사회와 달리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 J는 그 자유를 여실히 받아들였는지 외모도 포카혼타스처럼 변해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둘째는 J이모에게 홀딱 반했을 정도다. J는 이제 완연한 미쿡사람이 되어 있었다.


J는 유난히 습하고 무더웠던 올여름에 검은 한복을 입고 평소 왕래도 많지 않았던 시부상을 치르며 많은 고생을 했다. 이제 외모도 마음도 태도도 미국인 같은 그녀가 한국 조례문화를 오롯이 치르며 겪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J는 한국의 여전히 편협한 사고와 대우가 몹시 불편했다며 어떻게 경제 문화가 이렇게 발전했음에도 생각과 사고가 후질 수 있느냐고, 이걸 어떻게 감내하며 사느냐고 반문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을 하다가 한국어로 길을 물으면 너무 불친절한데 오히려 영어로 물으면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며 갸웃거렸다. 눈부시게 발전한 서울은 숨을 쉴 수 없는 공간이라며 머리 아프다고도 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J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듯 한국사회의 단면만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또, 어떤 유익하고 편리한 정보와 그 사용 방법을 알려 주면 거절하기 일쑤였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에 대한 타당성을 고집하며 자신의 생각만 끊임없이 말했다. 대화를 나눌수록 가치관도 세계관도 현실을 대하는 태도도 내가 예전에 알았던 J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과연 J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던 것일까.

습기 가득한 여름바람에도 버드나무는 춤을 추고 저 멀리 보이는 것들은 황홀하게 빛난다.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눈멀지 않으려 나는 늘 마음을 바투 견주며 살았다. 미루나무들은 밤하늘을 향해 올곧게 서있지만 바람에 흔들렸다. 나도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J는 여전히 작고 연약하고 소외된 것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꼭 만나야 하고 보살펴야 하는 지인들을 만났고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최선을 다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여름 끝자락 보스턴으로 돌아갔다. 자신은 앞으로 못다 이룬 꿈들에 도전하고 살 것이라며, 내게도 몸과 마음 건강하게 지낼 것을 내내 당부하며.


J는 올리비에 롤랭이 쓴 <수단 항구>를 무척 감명 깊게 읽었다며 내게 오래전부터 권했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연대의식과 한때 품었던 변혁의 낭만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라 했다. 다소 투박하나 위트와 직설 사이의 오묘한 경계를 좋아하는 J의 추천 책이었다. 귀국하여서는 필사를 시작한다고 했으니 얼마나 마음에 두는 책일까 생각하다 문득 J와 무척 닮아 있는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 역시 J에게 시대정신 비슷한 연대의식과 시간이 흘렀어도 변함없이 열린 마음으로 성숙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때는 옳다 여겼으나 지금은 빛바랜 가치와 세계관들, 그러나 여전히 소중한 것들. 함께 공유하던 것들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을 꺼내며 인생을 이야기하고 위안 삼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

불현듯 책 내용이 궁금하여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을 중고로 찾아 주문했다.


<수단 항구>는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정신을 함께 소유했던 친구 A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아프리카 수단 항구에서 편지 한 통을 받게 된 남자가 죽은 A의 삶을 찾아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남자는 친구 A의 흔적들을 하나씩 접하고 그의 삶을 68 혁명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해하게 된다. 25년을 만나지 못하고 지냈어도 A는 “여보게 친구”라는 한 마디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겼던 단 한 사람인 친구를 인생의 끝에서 부른다. 그 마음을 읽은 남자는 A의 마지막 시간의 증인이 되어 다시 수단 항구로 돌아와 죽은 A를 추억하며 A에 대한, 혹은 자신과 친구를 위한 글을 쓴다. 그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한 동지였고 친구였다.

수단 항구는 주인공 남자가 혁명 실패 이후 선택한 삶의 터전이자 세상에 대한 태도를 의미한다. 폐허와 부패, 위악이 넘치는 수단 항구에서 남자는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관조하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반면, A는 프랑스에 남아서 작가로 살지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한 여자와의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자신이 추구한 가치의 또 다른 실패감을 죽음으로 맞는다. 그들은 시대의 변화를 관통하며 인생을 비애스럽게 걸어간다.

사랑과 이별, 단절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이 시대와 이제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감정, 느낌, 관념들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역사가 진정으로 우리의 삶 속에 파고들던, 도덕적 몰락을 염려하던, 살기와 쓰기의 접점을 추구하던 그 시절의 그리움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하는데, 나는 읽는 내내 J가 떠올랐다.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하는 공간이라고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또한 어떤 숭고한 가치가 퇴색된 공간에서도 고결한 가치들은 절대 단절되거나 무로 사라지지 않는다. 현상에만 집착하며 현재를 보면 너무 암울할 뿐이다. 희망을 품고 유연하게 살아내면, 분명 고결한 가치와 숭고한 사상은 다시 피어난다고 나는 믿는다.

J도 분명 그렇게 믿을 것이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어느 사회에도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삶을 사는 이민자들을 많이 보았기에, 나는 J가 지나온 삶의 고단함과 인생을 헤아려 본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우주를 알아가는 광활한 일이다. 시간도 노력도 정성도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조금 다르거나 많이 다를 뿐이다. 나와 비슷한 결을 지닌 타인도 결국 자세히 보게 되면 또 다른 인격의 존재이다. 그러니 다른 것도 충분히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맑고 따뜻하고 깊은 눈’을 가진 자를 만나라고 말했다. 내가 평생 추구하는 3 눈이다. 여실히 부족하지만 이제 내가 그 눈으로 바라보고 같이 걸어가는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세상에 어리고 지성에 호기롭던 시절, 어리숙한 나를 따뜻하게 독려하며 이끌어 준 J와 벗들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지금 바라보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사물을 바라보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 주었던 그 고마움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유한한 인생, 무한한 이야기를 J와 계속 나눌 것이다.

J가 겨누는 날 선 칼날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품을 수 있는 칼집이 되어주는 것도 괜찮다 생각한다. 존중하고 배려하고 더 알아가고 더 깊어지자 마음먹는다.


나도 J에게 책 두 권을 선물하였다.

J도 읽고 분명 무언가를 오래 생각할 것이다.


먼 훗날 우리는, 우리의 수단 항구에서 서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훅 떨어지는 낙엽이 발등에 와 젖는다.

가을도 깊어지고 있다.



(2024 여름~가을, 水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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