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언어가 가진 힘은 무섭습니다. 어쩌면 핵무기보다 무서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설계할 때보다 청문회에서 더 신중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십계명은 인류의 근본적 윤리를 세우는 기둥이 되었고, 대통령의 한마디가 세상의 흐름을 바꾸며, 스타의 짧은 말 한 언행이 수많은 사람의 삶에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이란 단어는 물론, 존재 또한 언어를 통해 태어났고, 삶과 죽음을 언어 속에서 엮어갑니다. 언어는 생명을 불어넣고, 때로는 비수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후벼 팝니다. 인간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인간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언어는요.
줄임말, 신조어, 저급한 욕설. 단어들의 MZ, 이단아 같은 존재랄까요. 그것을 언어라 부를 수 있을지 무색한, 좀비 같은 것들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들 또한 병들고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성은 무시되고 합리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저출산은 비단 인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언어를 읽고, 쓰는 사람 또한 점차 사라져 갑니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인간의 멸종보다 언어의 멸종이 빨리 찾아올 것이 두렵습니다. 언어가 없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그들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애초에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마당에, 우리들을 다른 무엇인가로 불려질 수조차 있을까요.
물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일어날 일은 아닙니다. 애초에 언어가 사라질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언어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디에 남아있을까요. 무섭습니다. 인간은 물론, 저라는 존재가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이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겨야 할 것만 같습니다. 나의 삶이. 누군가 읽어주진 않더라도. 작게라도, 어디엔가 남아, 아득바득 살아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