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우산"
아직도 네 향기가 묻어있을 것 같아 꺼내보지 못한 우산
그날도 이런 봄비가 내렸다. 헤어짐을 알리는 문자 한 줄만을 남기고 떠난 너와의 마지막 날씨였다. 우산을 나눠 쓰며 걸었던 그 길에, 오늘은 혼자 서 있다. 차갑게 식어버린 네 마음처럼, 봄비는 무심하게 내 어깨를 적신다.
우산은 그대로다. 네가 마지막으로 접어 돌려준 그 모습 그대로, 1년째 베란다 한켠에 기대어 서 있다. 펼치면 네 향기가 흩어질까 봐, 아니 어쩌면 네 향기가 이미 사라졌을까 봐 감히 만지지 못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세차게 내리는 봄비를 맞으며 걷는다. 우산 없이. 네가 떠난 뒤로 처음 마주한 봄비다.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을 때릴 때마다 무뎌질 줄 알았던 그리움이 더욱 선명해진다. 무심한 봄비는 내 눈물인지 빗물인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지나가는 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봄비를 맞으며 걷는 여자를. 하지만 상관없다. 이 비에 젖어 너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지워질 수 있다면. 내 마음에 가득 찬 너의 향기가 조금이라도 묽어질 수 있다면.
어쩌면 오늘 밤, 돌아가는 길에 그 우산을 들고 나올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펼쳐보고, 네가 떠나간 그 버스정류장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또다시 베란다 한켠에 기대어 둘지도.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