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길 지하철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렇게 지치기 시작한 것이.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한때는 반짝이던 내 열정이, 이제는 희미한 불빛처럼 깜빡이기만 한다.
처음에는 몰랐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덮치는 불안감이, 월요일만 되면 찾아오는 두통이, 점심 시간에도 혼자 있고 싶어지는 이 마음이 모두 번아웃의 신호라는 것을. 나는 그저 조금 피곤한 것이라 생각했다.
어제는 문득 베란다에 있는 작은 화분에 물을 주었다. 얼마 만인지. 메말라있던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물을 머금은 흙에서 생명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에게는 언제 마지막으로 물을 주었을까.
오늘은 퇴근하고 오랜만에 동네 공원에 들렀다.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붉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동안 나는 너무 빨리 달려왔던 걸까.
직장 동료가 추천해준 명상 어플을 열어본다. 5분만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30분이 흘렀다. 잠깐의 휴식도 이렇게 달콤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번아웃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돌아보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조금 느리게 가도 좋아. 때로는 멈춰 서서 깊은 숨을 쉬어도 좋아. 이제 나는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려 한다.
오늘 밤, 오랜만에 따뜻한 차 한 잔을 우려본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반짝인다. 마치 나에게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