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 줄타기

by Camel

# 줄타기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고정비용들을 보며 한숨을 쉰다. 적금, 보험, 대출이자... 어느새 나의 삶은 이런 숫자들로 가득 찼다. 한때는 무한해 보였던 가능성이 이제는 매달 정해진 금액만큼씩 줄어드는 기분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마치 천천히 굳어가는 시멘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에는 유동적이고 자유로웠던 삶이, 시간이 지날수록 형태가 고정되어간다. 직장, 가족, 대출, 보험... 이런 것들이 하나둘 더해질 때마다 삶은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동시에 조금씩 더 무거워진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심코 스마트폰을 켜면 SNS에는 세계 여행 중인 친구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카페를 연 동료의 소식도 보인다. 그들의 용기가 부럽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현실적인 계산이 시작된다. 대출금은 어떻게 갚지? 노후는? 만약 실패하면?


책임이란 무게는 참 묘하다. 때로는 나를 억누르는 쇠사슬 같지만, 때로는 나를 지탱해주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기에 가족을 돌볼 수 있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정감이 때로는 새장이 되어 날개를 접게 만든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책에는 늘 모험을 떠나는 주인공이 있었다. 안락한 일상을 뒤로 하고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들. 그때는 그런 선택이 당연해 보였는데, 이제는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실패의 대가가 너무나 크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나이가 들수록 안전한 것을 선호하게 되는 걸까.


가끔은 상상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상상. 새로운 도전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상상. 하지만 그 상상 뒤에는 늘 현실이라는 무게가 따라온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의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려 한다. 어쩌면 진정한 자유란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작은 모험을 찾는 것, 일상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그것 또한 자유의 한 형태가 아닐까.


퇴근 후 배우고 있는 새로운 악기, 주말마다 떠나는 작은 여행, 점심시간에 몰래 쓰는 시... 이런 작은 일탈들이 삶에 숨구멍을 만들어준다. 완벽한 자유는 아닐지라도,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나만의 균형을 만들어간다.


결국 삶이란 끊임없는 줄타기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균형을 잃게 되고, 그렇다고 완벽한 중심을 잡으려 하면 오히려 더 불안해진다.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 그 과정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것.


이제는 안다. 책임과 자유가 반드시 대립되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는 책임이 주는 안정감이 있기에 작은 자유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을. 완벽한 해답은 없다. 다만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면서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image_fx_ (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화려한 새장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