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튤립, 봄을 담은 정원

by Camel

# 튤립, 봄을 담은 정원


가을, 차가운 흙을 파고 구근을 심을 때부터 나의 기다림은 시작된다. 손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흙 속에 알뿌리를 심으며 내내 상상한다. 봄이 오면 저마다 다른 색깔의 튤립들이 이곳에 피어날 거라고.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매년 조금씩 다른 색조합을 골라 심는 재미가 쏠쏠하다.


겨울이 지나고 봄의 문턱에 들어설 때면 가장 먼저 튤립의 새순을 발견하게 된다. 차가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초록빛 새순은 마치 작은 기적 같다. 아침마다 몇 센티미터나 자랐는지 살피는 일이 일과가 된다. 때로는 자로 재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기도 한다.


잎이 자라나고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면 설렘은 더욱 커진다. 아직 색을 알 수 없는 봉오리를 보며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피어날지 상상하는 시간이 특히 즐겁다. 까만 땅에서 솟아난 초록 잎사귀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모습은 마치 작은 생명의 축제 같다.


튤립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정원은 매일매일 달라진다. 오늘 피어난 꽃은 어제 핀 꽃과 미묘하게 다른 색과 형태를 보여준다. 아침햇살을 받으면 꽃잎은 투명할 만큼 영롱하게 빛나고, 저녁 무렵이면 꽃잎을 살짝 오무리며 하루를 마감한다. 같은 품종이라도 피어나는 시기와 방향에 따라 저마다 다른 매력을 뽐내는 것이 신기하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한창 피어있는 꽃잎이 비에 젖어 상하지는 않을까, 강한 바람에 줄기가 꺾이지는 않을까. 그래도 비가 그치고 나면 더욱 선명해진 색감과 촉촉해진 꽃잎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쩌면 식물도 사람처럼 때로는 시련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튤립의 개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한 달 남짓, 짧지만 강렬한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이내 시들어간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꽃잎이 떨어지고 잎이 누렇게 변해갈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이제는 안다. 이것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튤립은 내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가을에 심어 봄을 기다리고, 새순을 보며 개화를 기다리고, 봉오리를 보며 만개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설렘과 희망을 배운다.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지만, 분명히 다시 이 정원을 찾아올 것이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튤립이지만, 늘 새로운 감동을 준다. 어쩌면 달라지는 건 꽃이 아닌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해마다 조금씩 다르게 성장하는 내 마음처럼, 같은 튤립도 매번 다르게 보이나 보다. 그렇게 나의 작은 정원은 계절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image_fx_ (2).jpg


이전 14화# 하늘을 닮은 꽃, 델피니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