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먼 곳으로 떠나보낸 지 두 달, 꼭 62일이 되던 날, 아버지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노환으로 가는 귀가 약간 먹은 것을 제외하고는 시력도 나만큼 좋고 커다란 교자상을 혼자서 다락방으로 들었다 내렸다 하셨을 만큼 힘도 세고 건강하셨던 분인지라 감히 예상할 수 없었던 심근경색이었다.
혼자 남은 아버지를 모셔 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 아내가 물었을 때 내심 냉큼 그러자고 하고 싶었으나 그 말을 단호히 거절했다. 아내도 이미 환갑을 넘겼고 이리저리 건강도 좋지 못한 터였다. 내 부모니 내가 돌보아드리고 모셔야 하는 것은 맞지만, 열심히 한다고 해도 흉내내듯 소꿉놀이처럼 가사일을 하는 나의 꽁무니를 아내가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수습하듯 아버지를 돌본답시고 애써보았자 결국 아내가 고생하게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건조하게 주름진 손을, 밤마다 부지런히 두드려도 결국 피어오른 광대 위의 검버섯을, 목주름보다 도드라지게 부어오른 임파선을 보고서도 내 아버지를 돌보는 일에 함께 힘을 써 달라 말하는 것은 너무나 염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모셔와서 내가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아내를 돌보는 것도 아버지를 돌보는 것도 모두 해내겠다고 마음먹었어야 했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살던, 마당이 달린 그 조그마한 오래된 벽돌 주택에서 홀로 가슴을 부여잡고 떠나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었을 텐데.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아무런 노력 없이 두 손에 받아 든 내 심장에 죄책감이라는 상장이 거무튀튀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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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장례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어머니 상을 치른 지 고작 두 달 만에 다시 부고를 알리기가 부담스러웠던 탓이었다. 최소한의 연락만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자리에 나 홀로 보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존재도 몰랐던 아버지의 친척들까지도 나타나 내 손을 붙잡고 함께 밤을 새워 주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조차 혈연이라며 함께 있어주니 어딘지 한 구석이 편안했다. 슬아에서 멈추지 않고 승호까지 낳아 형제를 만들어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이들도 나를 보내는 자리에서 마냥 외롭지는 않겠지.
3일은 삽시간에 흘렀다. 돌아오는 버스 안, 기시감이 흘러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가 있어야 할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이제는 어머니 곁에 계실 것이다. 십오 년 가까운 세월을 만나지 못하면서도 어머니를 그리워하셨던 아버지라면, 분명 또 그새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를 만나러 가신 듯하다. 애초에 내게 그것을 말릴 힘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잘렸던 꼬리에서 냉큼 아찔한 통증이 느껴지고, 심장의 잉크가 축축한 눈물로 조금 씻겨내렸다. 내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에서 한 자, 어머니의 이름에서 한 자를 떼어 왔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도 잃고 어머니도 잃었다.
내 이름은 이제 아무것도 없어.
공기와 습기가 가득 찬 목소리에 뒤쪽 대각선에 홀로 앉은 아내가 덤덤히 물었다.
무슨 소리야?
헌석에서 헌, 수미에서 수를 따서 내 이름이 헌수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이제 헌석도 수미도 없어. 이제 내 이름은 아무것도 없어.
목구멍으로 흐르는 눈물에 목이 메어 웅얼거리는 것을 아내는 용케 알아들은 듯 내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바람이 버스의 표면을 때리는 소리가 귓가에 유난히 크게 울려 귀가 먹먹하다. 아내가 나를 가만히,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동정하는 것일까, 제 짝이 이제 뭣도 아닌 존재인 것이 안쓰러운 것일까, 아내의 눈에 동정이 담겨 있을까 그 눈을 나도 마주했다.
없는 게 아니야.
.......
없어진 게 아니고, 헌수로 남은 거야.
.......
헌석에서 헌, 수미에서 수를 따서 두 분이 헌수로 남은 거야.
슬그머니 내 주먹을 감싸 쥔 아내의 손이 서늘하다. 영 따스하지 못한 손이 왜 그렇게 포근하고 보드라운지 모르겠다. 그 차가운 온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쥐고 있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 깍짓손을 끼웠다. 그런데도 영, 절단된 자리가 아릿하고 아파 눈물이 멎질 않는다. 아내는 그런 내 곁을 말없이 지켜주었다. 앞에서 자는 체를 하고 있는 나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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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 초반,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자리가 있었지만 참석하지 않았던 것은 동창회장이 바로 '그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상처가 상처인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 가장 뾰족하고 거친 칼로 나를 푹 쑤셨던 그 녀석, 동구. 녀석은 악의 하나 없이 제 어머니가 나와 놀지 말라고 했던 것을 고스란히 나에게 전했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너, 아빠 없잖아." 알고 보니 나에게도 아빠가 있었고, 나는 어쩌면 가슴에 무언가를 품고 그 자리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찍이 해가 진 싸늘한 겨울, 어두침침한 맥주집에서 모인 우리는 어색함을 술로써 극복하고 붉은 얼굴의 절친들이 되었다. 그런 자리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방향대로 하나 둘, 내심 묵었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헌수 너 이 새끼, 그동안 왜 동창회 안 나왔어. 다들 네 소식을 얼마나 궁금해했는지 아냐!
말투는 호쾌하고 유쾌했으나 진심이 담긴 것을 숨기지 않는 그 녀석의 말에 나도 지기 싫어 부러 호방하게 대답했다.
너 때문이잖아, 너 보기 싫어서, 새끼야.
나? 나 왜,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냐?
의외로 팍 쪼그라들어 어리벙벙해하는 녀석의 얼굴에 나는 내가 약간 더 승리의 깃발에 가까웠다 생각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나는 옹졸한 속을 시원한 목소리로 덮기 위해 맥주를 입에 대며 대답했다.
네가 나보고 아버지 없다고, 너희 어머니가 나랑 놀지 말라고 그랬다고 했잖아. 딱, "너, 아빠 없잖아." 이러고.
내가? 내가 그랬었다고?
동구가 자리에서 몸을 벌떡 세웠고, 곁의 아이들이 장난스럽게 엄지를 세워 바닥을 향해 흔들며 우~ 하며 야유를 던졌다. 박동구, 쓰레기네! 내가 던지지 않은 내 마음의 야유는 대체 누가 던졌는지 모르겠다. 내 맞은편에 일어난 동구의 그림자가 내 전신을 덮었다. 갑자기 문득 등골이 서늘했다. 벌써 십 년을 훌쩍 넘은 이야기는 괜히 꺼낸 것 같다. 전혀 쿨하지 않다. 동구가 그걸 여태 가슴에 품고 있었느냐고, 소심하다고 나를 비난할 것이 분명하다. 동구의 일그러진 표정이 벌써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내가 언제? 동구의 말에 내 말문이 막혔다. 언제라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아주 어렸고, 일일이 기억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별 것 아닌 일이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사위가 나와 동구를 주목하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에 피가 몰린다. 괜한 말을 꺼냈다고 말하려 할 때였다.
미안, 미안하다야. 정말 미안해.
어?
어릴 때라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미안하다, 헌수야.
고개를 들어 조명을 가린 동구의 눈을 보았다. 어둑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렸다. 가는 시선 새로 동구의 처진 눈꼬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뱉는 말과 내 고막을 두드리는 목소리, 그 얼굴 근육들이 모두 하나같아 나는 더욱 얼었다. 머금고 있던 맥주가 목젖을 두드리며 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내 귀를 찢을 듯이 들렸다. 동구가 몸을 낮춰 앉았다. 나란한 시선이 마주 닿았다.
너무 철이 없었다. 정말 미안해.
아, 아니.......
야유하던 친구들이 몸을 조금 더 붙여 앉았다. 맞아, 박동구 진짜 어릴 때 막말 장난 아니었어. 쟤 나한테는 뭐랬는지 아냐? 와글와글 소리가 머릿속을 윙윙 울렸다. 나는 소리의 파도에 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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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는 그날 그 자리에서 질펀하니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런 주제에 친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택시며 버스에 태워 배웅하고 마지막으로 버스를 기다리는 내 곁에 척추가 무너지듯 퍼져 앉았다. 그러면서도 양손에 백팩의 양쪽 어깨끈을 꼭 쥐고 있는 폼이 정말이지 우스웠다.
헌수야, 정말, 미안하다아.......
코와 광대, 눈 주위가 잔뜩 붉어져서 주정처럼 끊임없이 내뱉는 사과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풋, 그 웃음소리에 동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괜찮아.
그래도.
나, 이제 아빠 있거든.
동구가 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 잠깐 사정 있어서 같이 못 사신 거였어. 지금은 같이 살아. 그래서 이제 아버지 계셔.
동구의 눈이 잠시 끔뻑, 끔뻑, 느리게 덮였다 열렸다. 그 모습이 어딘지 낯이 익은 것이, 꼭, 카멜레온 같다. 내가 사실은 도마뱀이었듯, 동구는 사실 카멜레온인 것일까? 흠, 하고 내뿜는 내 콧바람이 하얀 형체를 가지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구는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을 가로로 길게 늘였다. 야아, 잘 됐다! 쩌렁쩌렁한 녀석의 웃음소리가 축축한 겨울 공기를 두드렸다. 핫핫하. 대체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르겠는데 나도 덩달아 웃음이 배었다. 흐하, 흐하하. 입김을 타고 껍질로 덮고 있던 흉이 길게 뽑혀나간다. 나는 종종 그 말이 하고 싶었다. 나, 이제 아빠 있어. 어린 여름날 해가 겨울달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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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팔 세, 나는 고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