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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롸이트 Nov 17. 2023

때로는 도망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배우긴 했지만

호기로운 마음으로 도전했던 3종의 이모티콘이 모두 탈락했다. 


수정제안까지 포함해서 총 5번의 미승인 메일을 받았고, 오늘 마지막 메일이 왔다. 


사실 지난주 목요일쯤 네 번째 이모티콘을 만들다가 세 번째 미승인 메일을 받고 멘털이 와르르 무너졌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점은 '왜 떨어졌는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만 있다면 그걸 고치면 될 텐데, 그게 아니고 그냥 탈락이 끝이라니. 


떨어지는 이유를 결코 알 수가 없고, 아마 붙어도 내가 왜 붙었는지 모를 것이다. 


나름 인터넷과 책과 강의를 돌아보며 필승요소들을 갖다 붙였는데도 뭔가 상품화되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었나 보다. 



세 번째 탈락 메일을 받으면서 마음속에서 무언가 끊어졌던 것 같다. 


회사 일처럼 아예 남의 일은 아니지만, 온전히 100퍼센트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던 지금의 일들에 대한 고민들.


직접 만들지 않은 부분들을 가져다 쓰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자격지심들. 

(물론 불법은 아님, ai 아님, 상업 저작권 허용된 것들 비용지불하고 활용)


직접 만들었어도 누군가의 의뢰에 의해 만들어져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실체 없는 승인의 문턱을 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정작 내가 만들고 싶은 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없었던 날들. 


결코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알면서도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만들고 있던 네 번째 이모티콘 창을 닫았다.


그날따라 점심을 먹으며 마음에 남은 드라마의 한 장면을 가져다 놓고 무턱대고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배웠던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화면을 채워나갔다. 


꼬박 하루 만에 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길로 멈추지 않고 강의 두 개를 더 결제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 팬이었던 작가의 강의였고, 매우 유익했다. 


처음 배울 무렵에는 이해되지 않은 채 무작정 따라 했던 것들이 1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쌓이면서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동경하는 작가의 강의를 듣고 예제를 만들어서 올리며 태그 했다. 


댓글이 달리고 메시지를 받았다. 


강의를 들어줘서 고맙고, 후기를 남겨주면 고맙겠다는 형식적인 내용이었지만 이 분야 1 티어 작가와 소통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떨렸다. 


그렇게 오늘까지 내리 개인작업만을 하며 폐관수련의 시간을 보냈다. 


어젯밤 그 작가님의 새로운 강의 코스를 거금을 주고 결제했다. 


조금 많이 비쌌지만 꼭 배우고 싶은 기능이 들어 있었고, 열어보니 정말 알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방법으로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될 때까지 두드리겠노라 결심한 일에서 돌아서는 데는 약간의 수치심이 필요했지만, 막상 두드려보니 여기가 어딘지도, 어떻게 하면 열리는지도 모르는 문을 내리치느라 손이 뭉그러질 바엔 과감한 포기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하는 유튜버 이연 작가님이 하신 말을 되뇐다. 


때로는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라고. 


아직 문을 열만큼 내 주먹이 견고하지 않다면 좀 더 강하게 만들어서 돌아오리라. 혹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머리 아프고 지루한 창작의 과정, 그 끝에는 작가로서의 자부심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조금 면목없지만, 이제라도 깨달은 게 어디겠는가. 


사실 지난 1년은 그런 자부심 따위에 목멜 시기가 아니었다. 실제로도 경제적으로 큰 위기가 있었고 돈이 많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해온 외주들 덕분에 그 위기들을 넘었고, 그 과정에서도 배운 것이 많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이모티콘은 아직까진 내가 그렇게 몸을 던져 갈아 넣고 싶은 분야는 아니었던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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