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며 했던 힘찬 다짐들은 돌아서며 힘을 잃는다.
혹은 반복되는 좌절을 만날 때마다 빛도 잃는다.
분명하게 마음먹었던 목표들도 이게 맞나 자꾸만 의문이 들며 흐려진다.
내가 끊임없이 내리치기로 했던 첫 번째 도미노는 이모티콘 출시였는데, 이게 첫 번째로 넘길 수 있는 사이즈의 도미노가 맞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목표 설정에 오류가 있었다는 의심이 싹트자 모든 게 흔들렸다.
그전에 내 캐릭터부터 브랜딩 해야 하지 않을까?
브랜딩이라고 할만한 모양새를 갖추려면 정립된 세계관과 상품성 있는 캐릭터가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그걸 구현할 실력이 내게 있나?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창의력이 나에게 있었던가?
없는 것 같다. 아직은 부족한 것 같아.
그렇게 결론이 나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는 상황에 처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일단 강의를 결제했고, 세계관을 만드는 법에 관련된 책도 사서 읽을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가려니,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암흑의 시간을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몇 달 동안 수입이 없어도 괜찮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될 때까지 부딪혀보겠노라 호기롭게 선언한 이모티콘 제안은 두 번의 탈락메일을 받고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기존에 하던 돈 버는 일을 놓고 하자니 너무 불안하고, 병행하자니 속도가 더디다.
원래 하던 일을 언제까지고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언젠간 놓아주려고 하고 있지만 불안할 땐 어김없이 기웃거리게 되는 일이다.
장황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전시에 다녀왔다.
평소에 너무 좋아하던 작가의 전시라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집을 나섰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전시 내내 거의혼자였다.
촬영이 가능한 전시라 원 없이 좋아하는 작품을 찍어서 남기고 관람했다.
전시 마지막 코스즈음에 영화관 형식으로 전시된 작품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건 다 보고 가야지.
30분 넘게 이어지던 단편 영상들을 다 보고 나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캐릭터들의 세계관이 펼쳐졌다.
그걸 알고 나니 지나온 작품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세계관의 존재와 그 이해도가 작품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동시에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겨났다.
별로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해보는 게 맞겠지..
어렵고 복잡한 마음으로 다녀온 전시는 그래도 많은 것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