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떠나갈 사람이었다.

by 옐로롸이트

친구에게 실수를 했다.

상심한 친구는 모진 말을 뱉으며 나를 떠났다.


그 친구는 예전에 한번 나를 뒤에서 욕했던 사람이라 나도 늘 마음이 불편했다.

쎄한 느낌은 늘 틀리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생각하며 감사와 가식으로 점철된 관계였다.


나도 그리, 아니 결코 편하지 않았던 관계였다.

결국 그런 관계는 깨어지게 마련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사람이 어떤 능력을 가졌으며 얼마나 대단, 혹은 하잘것없는 사람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리를 놓아 큰 기회로의 길을 열어줬지만 결국 살아남은 것은 내 능력 덕분임을 믿는다.


물론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내가 그걸 잊은데 대한 변명은 없다.


아니다 변명은 있다.


내 기준으로는 그동안 충분히 고마워했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동안 우리 관계의 모든 부분에서 나는 늘 감사하는 입장을 깔고 낮은 자세로 포복했다.

물질적 보답도 잊지 않았다. 문을 열어준데 대한 보답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발버둥 쳐 살아남은 것은 내 능력이다.

하지만 과연 그 도움 없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래서 사과했다.


내 잘못을 깨달은 순간 변명의 여지가 없이 큰 실수였음을,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임을 전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납작 엎드려 할 수 있는 사과는 다 한 것 같다.


사실은 얼마 전부터 그냥 서서히 마음을 닫는 게 느껴져 나도 더 다가갈 수 없었다.

아마 이미 나를 밀어내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랬으니 이렇게 한방에 쳐낼 수 있었겠지.

성격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있다.


내가 한 실수는 분명 누가 겪어도 너무나 서운해할 일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한방에 여지도 없이 사람을 쳐낼 정도로 분노가 일었던 데는 아마 이유가 있었겠지.

입장을 바꿔도 변명할 길이 없는 일이다. 나 역시 그렇게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진 않았을 거다. 진심으로 그 친구를 위한다면.

그 친구를 위하지 않았다면 그냥 조용히 마음을 닫고 밀어냈겠지.


이렇게 칼로 썰듯 잘라냈다는 것은 그저 이미 내가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빌빌대는 관계가 과연 언제까지 갈까 수도 없이 생각했다.

이토록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인연을 이어가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 주눅을 느낄 상대방을 위해서도 이제 서로 놓아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들도.


‘잘해줘도 어차피 수틀리면 날 떠나니 나도 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말하던 누군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이번 일로 너무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스럽다가 미안하다가 눈물이 났다. 나는 아직도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차분히 생각해 보니 같은 일을 나의 다른 친구들이 겪었다면 과연 그 애처럼 행동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언가 돌아올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준 도움이었다는 걸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던 걸까.

상대방의 실수 한 톨에도 그렇게 가차 없이 연을 끊는 그의 인생은 너무 외롭고 고단하지 않을까.


사회적, 경제적 여견만 놓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놓고 봤을 때, 나보다 나을 것이 하나 없던 그의 인생에는 그저 그게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가여워졌다.


상대방의 아주 작고 미세한 실수나 단점에도 바르르 떨며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던 그녀는 결국 나도 같은 방법으로 밀쳐냈다.


그간 내가 들어오던 말들을 떠올려보면 어디 가서 누군가에게 내 욕을 어떻게 할지 이미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눈에 훤하다.


을의 입장에서 맞장구치며 들어줬던 수만은 험담들이 사실 주어만 바꾸면 다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을.


요 몇 년간 환멸 어린 인간관계를 겪으며 느끼는 바가 많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꾹꾹 다짐하며 몇 자 적어본다.


그 사람의 능력과 인맥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결국 내 능력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인맥이 기회가 될 순 있지만 결국 주어진 기회를 잡아 능력으로 키우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언젠가 그 사람의 힘이 내 힘이 되겠지, 혹은 도움을 받고 내가 더 크겠지 하는 생각에 붙잡은 관계들은 결국 모두 어그러졌다. 나부터 시작이 잘못되었으므로. 하지만 앞뒤 없이 그저 함께하려고 시작한 관계는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이 성장해 갔다. 나부터,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어야 한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 사람이 없었으면 오늘 내 모습과는 조금 다른 내 모습이 또 있었을 거다. 나를 조금 더 다독여주자.


자신을 너무 갉아먹지 말자. 떠날 사람은 떠난다.

한번 깨어진 관계는 결코 이어 붙일 수가 없다. 언젠가 그 자리가 반드시 다시 터진다. 끊어진 끈을 이어 붙이려 아무리 애를 써봐야 내 겨드랑이만 아프게 찢어진다. 놓아줄 사람은 놓아줘야 해. 바보같이 같은 사람과 같은 일로 그걸 두 번이나 겪고야 깨달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곁에 남을 사람은 남고 떠날 사람은 아무리 잘해도 떠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되 무례하지 않게, 좋아할수록 더 선을 지키자. 간직하고 싶은 관계일수록 소중하게 다루자.


실수했으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자. 용서받지 못한다면 거기서 끝내야 한다. 너무 납작 엎드리고 너무 많이 죄송해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말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이 죄송할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같은 일에도 내 곁에 남고, 누군가는 떠난다.


보다 나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자격지심을 가지지 않는, 또 내가 자격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친구. 하지만 서로에게 발전적인 자극이 될 수 있고 서로를 진심으로 동경할 수 있는 그런 친구. 그런 친구를 가지려면 내가 일단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지.


상대의 마음에 대해 지레짐작해서 내 멋대로 해석하지 말자.

~하다면 ~할 거야. ~라면 ~리가 없어. 하는 식의 가설들은 나에게만 적용해야 한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남에게 관심이 없고 적의도 호의도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악의를 가지고 나를 공격할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다면 그건 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지만. 평소에 잘 지내던 사이라면 결코 고의로 나를 상처 주려고 한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모두가 부족한 사람이기에 실수가 있었을 뿐. 사과를 주고, 받고, 혹은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 없음이 있을 뿐.


그 친구도 알았을 것이다. 내가 결코 본인을 그렇게 생각할리 없다는 것을. 하지만 내 실수가 본인에게 너무 아프게 와닿으니 그동안 쌓아온 시간과는 아무 상관없는 마음들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을 테다. 나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 친구가 받아준다 한들 이 관계가 다시 이어지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다. 나 역시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결코 나의 실수를 덮거나 합리화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명백히 내 잘못이었고 상처를 준 것이 맞다.

부덕의 소치로 또 한 번 친구를 떠나보내며, 흘린 눈물을 벅벅 닦으며 쓰는 반성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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