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지치고 일이 손에 안 잡히는 요 며칠이었다.
유난히 덥고 힘겨운 주말이 지나고 겨우 혼자 있을 수 있는 월요일이 찾아왔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무 생각 없이 릴스를 뒤적이다 친구를 만났다.
사실은 하루종일 혼자 있고 싶었는데, 전부터 어렵게 약속을 잡은 친구다 보니 더 미룰 수 없었다.
늘 먼저 연락해 주는 오래되고 소중한 친구였으므로 귀찮은 마음을 털어내고 목소리가 가라앉도록 수다를 떨었다.
진솔한 내 마음, 조금의 잘난 체가 섞인 이야기들을 목청 높여 늘어놓아도 둘 중 누구도 의미를 곡해해서 듣지 않는 그런 사이다.
친구가 아이를 낳은 후론 육아와 부부생활의 어려움이 거의 주된 주제다.
결혼도 출산도 내가 1년 정도 빨랐기에 친구는 늘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공감한다.
내 조언과 격려를 귀 기울여 듣고 심지어 적용도 하려고 노력하는 고마운 친구다.
그러다 보니 나도 한 가지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 늘 열변을 토하곤 한다.
둘 다 육아에서 벗어나 먹고 싶은 요리를 먹고 마시고 싶은 차를 마시고 푹신한 소파에 누워서 실컷 수다를 떨다 돌아갔다.
그러다 보니 나의 저녁은 조금 기운이 빠지고 지쳐있었다.
내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당최 키워드가 잡히지 않아 머릿속이 답답했다.
빈화면을 띄우고 첫 점을 찍는 일은 늘 망설여진다.
하지만 일단 주어진 조각들을 늘어뜨리고 하나둘씩 맞춰가다 보면 점점 길이 트인다.
래퍼런스 정도만 모아두려고 했는데 두 시간 만에 70프로 정도의 작업이 완료되었다.
역시 시작이 중요했다.
그냥 하는 것. 일단 시작하는 것.
주변 사람들이 놀라고 늘 칭찬해 마지않는 내 추진력의 비결이다.
피곤하고 집중이 안되고 무기력하고, 그런 온갖 핑계들은 일단 넣어두고 마우스를 잡는 것.
엉덩이를 붙이고 일단 손을 움직이는 것. 그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또 한건의 무기력을 넘어선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며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