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날
“내 사진 지워. 내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 하지 말라고!”
“이게 무슨 니 사진이야? 가족끼리 같이 찍은 사진인데!”
“엄마. 요즘 딥페이크 범죄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사진 도용 되면 어쩌려고?”
“배경 사진이랑 메인이랑 딱 두 장이잖아. 얼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아. 이거는 못 지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란 말이야.”
첫째는 알까?
자기 졸업식 때 찍은 가족사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날이라는 것을?
너무 자랑스러워서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놨다는 것을?
첫째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가기 위해서 한 달을 준비했었다.
짧고 굵은 몸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마음에 드는 코트를 찾아 근처 아웃렛을 헤매며 돌아다녔다.
사진 잘 나오려고 졸업식 전 일주일은 저녁 6시 이후에 먹지도 않았다.
정성이 통했는지 졸업식 날의 내 복장과 메이크업은 잘 어울렸고 첫째와 둘째를 양쪽에 끼고 찍은 가족사진은 정말 마음에 꼭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무의식중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만 12살을 목표로 정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12살까지는 어린 시절이라서 엄마가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한글도 떼야 했고 구구단도 외우게 해야 했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 선물을 챙겨줘야 하니까 죽을 수도 없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가 노력하면 우등생이 된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부모가 노력하면 산타를 믿는다.
그 어린 시절, 그 나이 때만 해 볼 수 있는 경험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 내가 다시 저 나이 때로 돌아간다면 부모에게 받고 싶은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며, 나름 다 누리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12살부터는 엄마가 없어도 최소한의 사람 구실은 하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중세 시대 태어났으면 귀족이 아닌 이상 견습공으로라도 밥벌이해야 했을 나이 아니던가?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을지언정 혼자서 끼니를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를 떠올려 본다.
저 어린 것이 어느새 커서 학교에 입학하다니 싶어서 감격했었기에, 마냥 웃으면서 좋았던 졸업식과는 다르게, 뭉클했었다.
너도 이제 고생 시작이구나 싶어서 안쓰럽기도 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둘째까지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자 우리 집에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없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 선물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사춘기 청소년 둘이 생겼다.
연년생 아들 둘은 교복을 입고 중학생이 된 것이, 능력치 업그레이드된 게임 캐릭터라도 된 것처럼, 뿌듯해했다.
이제 새롭게 진입하게 된 중학생이라는 퀘스트의 난이도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씩씩하게 적응해 나가는 것이, 역시 활력이 넘치는 때구나 싶다.
“왜 내 졸업식 사진을 쓰는 건데? 이번에도 졸업식 사진은 찍었잖아?”
“아직도 포기하지 않네. 거긴 니가 없잖아. 니가. 키 작아서 혹시 초등학생으로 오해받을까 봐 동생 졸업식에 안 왔잖아.”
항상 야근과 출장으로 바쁜 남편도 당연히 빠졌다.
둘째의 졸업식 사진에는 나와 둘째뿐이다.
나는 남편처럼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명함도 없어서, 어디 가서 누가 뭐 하시냐고 물어보면 가정주부고 애 둘 키운다고 대답하는데, 애들 사진으로 카톡 프로필 꾸미는 것까지 이제 허락을 받아야 하나 싶어서 짜증이 난다.
남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은, 서너 살 시절의 아이들 사진과, 해외 출장 갔다가 관광 명소에서 찍은 독사진이다.
남편의 사진첩을 가끔 살펴보면 회사 일과 관련해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내 사진첩에는 죄다 애들 관련된 사진 뿐이다.
아이들 등장하지 않는 사진 찾기가 더 어렵다.
나도 명함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남편이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되느라 명함이 바뀔 때마다 생각했다.
12살까지 키웠다고 어디 가서 부장대우 해주지는 않는다.
3살짜리를 키우나 13살짜리를 키우나 엄마이고 가정주부일 뿐이다.
사회적 성취감과는 다르다.
12살까지 잘 키워야지 했던 엄마로서의 내적 목표는 나 외에는 아무도 그 가치를 쳐주지 않는다.
잘나가는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하다 하다 남편한테까지 질투를 느끼는 게 너무 하찮지만, 나는 남편의 명함이 부럽다.
그 부러움을 비참함이 아닌 부러움 정도로 추스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이들과 행복했던 추억이 많기 때문이리라.
그런 순간들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첫째 졸업식 사진을, 그래서 카톡 프로필로 해둔 거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카톡 프로필을 바꿀 생각이 없다.
졸업식의 주인공은 애들이었지만, 나 보다 더 그날에 큰 의미를 두고 살지는 않으리라.
다행히 첫째가 둘째 졸업식에 안 온 것이 좀 미안했는지, 지금 올려둔 사진이 마지막이라는 조건으로 카톡 프로필 사용을 허락해 주었다.
앞으로는 더 이상의 초상권 침해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이걸 고마워하자니 치사하고, 이걸 슬퍼하자니 그럴만한 일이 아니라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덤덤하게 굴었다.
그런데 갑자기 카톡 프로필 이름으로 고민이 또 된다.
애들 이름을 붙여서 누구누구 맘으로 살아왔는데, 애들이 싫어할 것 같아서, 내 이름 석 자로 바꿔야 하나 싶다.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카톡 이름을 하고 있지 살펴보니 나처럼 애들 이름으로 써놓은 엄마도 있지만 자기 이름을 쓰고 있는 엄마도 많다.
내 이름 석 자로 변경할까 하다 관둔다.
십 년 넘게 애들 이름을 붙여서 썼더니, 어쩐지 내 이름 석 자가 더 어색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말고 마음의 준비가 되면 조만간 바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