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 삼천지교
“나 목동으로 이사가.”
그래. 네가 그래서 오늘 나를 만나자고 했구나.
남자로 치면 불알친구.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
결혼하고, 애 낳고, 일하고, 사는 동네도 다르고, 너무 바빠서 일 년에 한두 번 생일쯤에나 만날 수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생일도 아닌데 먼저 연락이 왔기에 자랑할 것이 생겼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꼭 자랑하고 싶은 일 있을 때만 먼저 만나자고 연락이 오더라.
가끔 뭐 하자는 건가 짜증이 났지만 나도 사는 게 정신없어서 평소 연락을 전혀 못 하고 사니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나쁜 일이 생겨서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이 생겨서 밥 먹자는 건데 샐쭉하는 게 속 좁은 거지.
결혼하고 애를 낳기 전에는 친구들이 굉장히 소중한 존재들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애들이 생기니까 친구를 대하는 마음도 예전 같지는 않다.
서로 너무 인생이 달라져서 그런가?
할 말들도 점점 줄어든다.
친구는 맹모 삼천지교를 따르려는 것인지, 큰 애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강서구로 이사를 하더니, 작은 애 중학교 입학을 위해 목동으로 들어간단다.
아마 세 번째 이사는 유학할 때 낳은 큰 애 시민권 유지를 위한 미국행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친구 따라서 첫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했었다.
강서구로 갈 형편은 안 안돼서 광명으로 말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첫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보낼만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있는 곳을 찾아온 곳이다.
애들을 낳고 어린이집까지 보냈던 신혼집은 서울 변두리였는데 학군이 별로라고 소문난 동네였다.
초등학교는 평범했지만 중학교가 안 좋기로 유명했다.
조선족과 탈북자 다문화가족이 많은 지역이라 그 아이들 중심으로 교육하는 데다가, 다른 학교에서 강제 전학 당한 아이들을 받아주는 학교라서 사건사고가 많다고들 말했다.
그래도 나는 그때까지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을 못 느꼈기에 친했던 동네친구엄마들이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한다고 많이들 떠날 때도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이사는 충격이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다 그래도 이 친구만은 그러지 않으리라고 여겼었다.
별다른 사교육 받지 않고도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들어간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디서 학교에 다니든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한다고 말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갑자기 치맛바람이 불어서 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이사까지 한다니 충격이었다.
집들이로 초대를 받아서 간 친구 집 베란다에서 앞으로 그 집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데 미치겠더라.
원하는 중학교 보내려고 이사하려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해야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애들이 친구들 때문에 이사를 안 가려 든다.
학원을 보내려면 목동까지 학원 차가 가능한 지역이 좋다.
뭐 그런 조언을 해주더라.
명문대 나온 쟤도 저러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이러고 손을 놓고 있을까 심란해져서 그날 저녁 잠이 오지 않았다.
나한테까지 치맛바람이 전염된 것이다.
그날부터 부동산채널과 부동산앱과 부동산뉴스를 살펴봤고, 우리 형편에 갈 수 있는 학군지를 알아봤다.
강남구와 목동은 대출을 껴도 안 되니 패스하고, 강남구와 목동 근처 동작구와 강서구를 살폈다. 아이들 학교를 위해서라면 굳이 서울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남편 직장은 다닐 수 있는 거리여야만 했다.
보낼만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도서관까지 있는 곳, 아파트 평수는 방 세 개면 되고, 될 수 있는 한 평지였음 좋겠고, 복도식보다는 계단식, 그렇게 조건을 세우고 찾고 찾고 찾았더니 갈 수 있는 곳이 좁혀지더라.
그리고 결국 낙점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엄마는 너희 때문에 학교 앞까지 이사를 왔잖아. 공부하든 하지 않든 그건 네 탓이지. 나는 할 만큼 했다.”
그 한마디 하려고 이 짓을 벌였나 싶지만 동시에 그 한마디 하려고 이렇게까지 했던 내가 대견스럽다.
맹모처럼 아이를 위해 이사한 사람이 그 당시에도 맹모 한 명만은 아니었겠지.
맹모처럼 자식이 성공한 경우가 맹모 한 명뿐이었다면 또 몰라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우리 형편에 목동은 못 들어가고, 미국은 더 못 갈 것이다.
광명이 욕심부릴 수 있는 최대치이다.
여기서나 잘했으면 좋겠다.
중학교 가서 시험을 치러보니 여기서 잘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에 희망을 품어본다.
실개천 같은 목감천이 보이는 곳에서 태어나 취학 전 어린 시절을 보냈고, 훨씬 넓은 하천인 안양천이 보이는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니, 어른이 돼서는 한강뷰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나의 비약 심한 상상에 남편이 정신 차리라고 쪽을 준다.
그나저나 학군지만 따지지 말고 오래된 아파트라는 것도 고려 해야 했는데.
33년 된 아파트라 비가 오면 누수가 있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배관도 오래돼서 문제가 많다.
원하는 중학교로 입학을 시켰으니, 이제는 광명 어디로든 이사 갈 수 있지만 보내고 싶은 고등학교도 바로 앞에 있는지라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참아야만 한다.
이런 내 수고를 아이들이 고마워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