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전화도 지 받고 싶을 때만 받고, 필요할 때만 전화하고, 내 말 다 안 끝났는데도 지 할 말만 하고, 열불나서 통화 못 하겠어요.”
“우리 애들은 아빠가 가족 단톡방 개설하고 초대했는데 대꾸도 없이 나가버렸잖아.”
그래. 그래야 사춘기지.
우리 집 애나 저 집 애들이나.
요즘 오다가다 안면 있는 동네 엄마들을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떤다.
다들 자기 자식 흉을 보느라 바쁘다.
집마다 사춘기가 온 자식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보면 하소연하지 않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요즘 감당도 못 할 거면서 아기 강아지가 왜 이리 키우고 싶지?”
“절대 안 됩니다. 고생만 하세요.”
“우리 애들은 아침도 아예 안 먹고 피시방 고고. 저녁밥 외엔 밥 해줄 일 없고, 그러다 학원 갔다가 저녁에 와서 저녁밥 먹고. 우린 먼저 자고. 걔네는 게임 숙제 티브이보다 새벽 늦게 자고. 난 요즘 아기강아지 동영상숏츠 봄서 맨날 웃어. 애들 봄서는 화만 치밀어 오르고.”
“그래도 밥하지 않는 건 좋네요. 저희 집 집돌이들은 나가지를 않아서 삼시세끼 해 먹이는 게 죽겠슴다.개학해야 점심 한끼라도 안 하죠.”
“그 대신 우린 밥값으로 많이 나가.”
“개는 또 하나의 족쇄야. 애는 집에 있어도 열받고, 나가도 열받고.”
“나가는데 왜 열받아? 눈에서 안 보이는데?”
“긍게요?” “집에 있음 누워서 폰하던가 화장실서 폰하던가 먹으면서 폰하던가. 나가면 애가 뭐 하는지 하루 종일 감감무소식이고. 이래저래 속 터져.”
만나서 이야기하고, 수시로 카톡 해도, 시간 나면 커피 한잔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말해도 말해도 또 할 말들이 생기는 것이다.
같은 학교 다닌 친구, 같은 학원 다닌 친구, 같은 회사 다닌 동료,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맺어봤지만, 동네친구엄마들 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
보통 친구들은 취향이나 취미가 같아서 대화가 통하니 사귀게 됐지만, 동네친구엄마들은 아이들 때문에 사귀게 되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같은 반 내지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같은 반 엄마들.
애들 등원시키고 커피 한잔 나누다가, 애들 함께 축구교실 보내고 기다리다가, 친해지는 것이다.
나의 첫 동친맘(동네친구엄마)들은 애들 어린이집 보내던 시절 만난 엄마들이었다.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나서 여섯 명이 모여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며, 마트 세일정보와 온라인 쇼핑몰 득템 정보를 나누며, 벼룩시장도 함께 가고 애들 육아 정보도 교환했었다.
일주일마다 서로 다른 한 가지씩 반찬을 만들어서 나누는 반찬 교환도 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맛집도 찾아다녔다.
거의 매일 만났는데 아이들 학교 입학을 앞두고 각자 원하는 학군지와 동네 조건을 찾아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여섯 명이나 되어서, 그 안에서 친한 사람 덜 친한 사람 나뉘기도 했고, 싸움도 있었지만, 삼 년 정도 끈끈한 관계의 모임이었다.
나의 두 번째 동친맘(동네친구엄마)들은 첫째 초등학교 1학년 반 모임에서 만난 엄마들이었다.
주말마다 반대표 엄마가 주선하는 키즈카페, 놀이터, 체험학습에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안면을 익혔고, 여자애들은 인라인스케이트, 남자애들은 축구교실 보내면서 함께 기다리던 인연으로 친해지게 되었다.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나이도 차이 났지만, 모두 나 같은 아들 엄마들이었고, 서로 귀찮게 하지 않았으며, 동네 정보 학교 정보 등을 교환하다 보니 점점 더 자주 보게 되었다.
어린이집 시절 동친맘 때처럼 열렬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그 덕분에 중학교까지 오래도록 인연이 지속된 듯도 하다.
너무 속속들이 다 알고 매일 붙어 다니면, 뒷말 나오고, 뒤끝이 안 좋다.
아주 친한 친구들은 아닐지라도, 애들 키우면서 겪게 되었던 사건사고들 위로했고, 가족 대소사의 푸념을 나누며, 세월 갈수록 따뜻한 관계가 되었다.
엄마들은 친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성향이 전혀 달라서 친하지 않았는데, 같은 반으로 잠깐 스쳐 지나간 관계일 뿐, 같은 반일 때도 어울리는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들이 계속 친구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끼리 너무 친했다면 분명 아이들의 관계가 좋거나 나빠졌을 때 엄마들 관계도 영향을 받았으리라.
결혼하고 카톡으로 생일 선물이나 주고받으며, 경조사나 챙기고, 일 년에 한두 번 보기도 힘들어진, 그래서 막상 만나면 약간은 어색한, 결혼 전 친구들.
그 친구들보다 동네친구엄마들이 만나면 더 재미있는 이유는, 사는 동네, 사는 형편, 아이라는 주요 관심사, 공통점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들 인생의 가장 큰 관심사는 자식들이었고, 아이돌 팬들처럼 자식들에게 꽂혀 있었으며, 자식들 잘 키우기 위해서 각자의 방법으로 아등바등 최선을 다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애들과 살다시피 했던 놀이터가 생각난다. 아이들은 어린이집 끝나면 놀이터로 곧장 달려가서 해가 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지치지도 않고 놀았다.
그 놀이터 의자에는 나처럼 자기 아이가 다칠까 봐 지켜보고 앉아 있는 엄마들이 많았다.
서로 눈빛만 마주쳐도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같이 통하던 마음들.
그 공감해 주는 마음들과 나누었던 수다들이 없었다면 놀이터에서 시간을 결코 버텨 낼 수 없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