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모든 일을 엄마 탓
“엄마! 막혔어!”
“저건 대체 누굴 닮은 거야!
”내가 엄마 닮지, 누굴 닮아.”
둘째가 나를 부른다. 변기가 또 막힌 것이다.
남편이 있으면 남편이 변기를 뚫고 남편이 없으면 내가 막힌 변기를 뚫는 게 우리 집안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둘째도 중학생이 되었지만, 아직 제 똥 막힌 거 뚫을 수준은 못 된다.
첫째가 스마트폰 기능을 나보다 더 잘 알아도, 벌레를 못 잡아서 엄마를 불러대는 것처럼.
그래도 나에게는 최신형 이중압축기 뚫어뻥이 있어서 별문제는 없다.
벌써 우리 집의 세 번째 뚫어뻥.
얼마나 열심히 사용했는지 앞의 두 개는 낡고 찢어져서 버려졌다.
우리 집 뚫어뻥의 주 용도는 둘째의 똥으로 인해 막힌 변기 뚫기다.
둘째는 이른둥이로 태어나 먹는 것도 싸는 것도 신경을 많이 써야만 했다.
분유 수유하고 트림할 때까지 한 시간을 안고 토닥여도 매번 토하기 일쑤였고, 장도 기능이 떨어지는지 변비로 염소똥을 싸곤 했다.
소아과의사와 상담했더니 식도가 짧아서 그럴 수 있다며 토하는 아기들을 위한 분유를 사다 먹이라고 했고, 약국에서 프랑스산 특수 분유를 사다 먹였다.
마찬가지로 똥에 좋다는 유산균도 종류별로 다 먹여본 것 같다.
이유식을 거쳐 밥을 먹게 되면서 토하는 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되었지만, 변비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고 조심스러운 성격에 밖에서는 신호가 와도 똥을 참았다가 꼭 집에 와서야 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 일정도 묵힌 똥을 보다가 변기가 막혀버리곤 했다.
잘 익은 바나나와 삶은 고구마를 먹이면 증상이 개선되었지만 둘 다 둘째가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기에 먹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종종 둘째의 똥에 막힌 변기를 뚫는다.
첫째는 둘째와는 다르게 똥을 잘 싸는 것이 또 문제였다.
음료수 종류를 좋아하고 조금만 신호가 와도 바로 화장실로 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혼자서 뒤처리하니까 아무 문제가 없지만, 어린이집 다닐 때만 해도 어린이집 선생님이 뒤처리를 도와주셨기에 눈치가 보였다.
“되도록 집에서 볼일 보고 보내주세요” 한마디 들은 날은 커피라도 사다 드려야 맘이 편했다.
어린이집뿐만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 다리가 부러져서 휠체어 타고 다닐 때가 있었다.
여자 담임선생님이 용변 처리를 도와주실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항상 학교 근처에서 대기했었다.
화장실 가고 싶어 한다는 연락이 오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말이다.
기저귀만 떼도 살 것 같았던 시절, 팬티를 입기까지 첫째와 둘째 변기에 앉는 습관 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이 노력했던가?
식탁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싸놓은 똥 무더기 치우기, 자다 깨서 분리수거함에 쉬해 놓은 거 치우기, 매트 아래 스며든 용변 치우기.
아이들을 연습시키는 과정은 내 분노조절장애와 싸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이었는데 왜 그토록 화를 냈던가 싶다.
아마도 아이들의 그 모든 뒤처리가 내 몫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래도 다행히 힘든 일도 익숙해지면 적응되기에 이제 둘째로 인해 막힌 변기 뚫는 일에는 별다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물 자주 마시고 유산균 잘 챙겨 먹어서 하루에 한 번은 똥 싸자.”
“내가 알아서 할게.”
“정말 니가 알아서 잘하면 내가 변기 뚫을 일이 왜 있어?”
“이게 화낼 일이야?”
그래. 화낼 일이 아니지.
변기 뚫는 거는 화낼 일이 아닌데, 말대꾸하는 너한테 화가 난다.
왜 “알았어.” 한마디면 될 것을 속을 뒤집어 놓을까?
고분고분하면 세상이 무너지나?
너의 모든 것을 함께 책임져 주는 엄마한테 좀 친절하면 어때서?
아이가 깨트린 컵의 조각을 내가 치워왔다.
아이가 밟아서 다칠까 봐.
아이가 낙서해 놓은 벽면을 내가 지워왔다.
아이가 저지른 일이 내가 저지른 일 같아서.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나 잘못한 일을 듣게 되면 내가 사과한다.
내가 잘 못 키운 거 같아서.
나와 닮아서 모르는 사람이 봐도 내 아들인 너는, 우주의 모든 일을 엄마 탓할 수 있어서 좋겠다.
아이들이 법적으로 자기 일을 스스로 책임져야만 하는 성인이 되는 것을 기다린다.
최소한 그때는 자기 똥으로 막힌 변기를 자기가 뚫을 수 있겠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내가 부모라는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내 몸에서 나왔고 한 몸처럼 산 세월이 길어서 사는 동안 계속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낳은 게 죄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속담이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