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우이나아

바보보단 반항아가 낫지

by 동네줌마쓰리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면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라서 방문을 닫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피해 있던 기억이 있다.


둘째 방에 앉아서 애들 싸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애들이 둘 다 중학생이 되자 어른처럼 싸우기 시작했는데, 서로 때리지는 않았지만, 말싸움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고는 했다.


둘을 중재하고 말리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매번 나까지 휩쓸려서 셋이 싸우는 지경으로 번지는 꼴을 몇 번 겪고 나니, 피해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여겨지더라.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연년생 형제지만, 첫째가 워낙 야무지고 빠릿빠릿해서 둘째가 꼼짝을 못 하고 살았었다.


하지만 그런 둘째도 사춘기가 되니까 하극상이 시작되었고, 이해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아서 싸움이 되었다.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첫째를 이겨 먹고, 나한테도 이겨 먹을 지경이다.


둘째와 말을 섞다가 부아가 치밀어 오를 때면, 둘째 한글 가르치던 시절을 되새김질하며 바보보단 반항아가 낫지 자신을 다독인다.


“우이나아.”

“우!리!나!라!”

“우이나아.”

“우리나라라고!!”


둘째는 발음에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말하기로 되지 않는 아이에게 우리나라로 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첫째 때 한글을 가르치는 것도 너무 힘들었지만, 그건 평범한 축에 속했던 거다.


그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했다.


첫째 때 힘들었던 점은 살면서 한 번도 공부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이를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이가 한글을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는 교육프로그램의 말만 믿고, 놀이터에서 놀게만 뒀던 것이 화근이었다.


입학을 육 개월 앞에 두고도 한글을 궁금해하지도 공부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내 마음이 급해졌다.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한글 교재를 구매해서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야 하는 첫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학교 교육의 힘을 믿으며 입학 후에 한글을 떼면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주변 엄마가, 아이가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담임선생님께는 신경 좀 써주시라는 말을 들었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정말 모질게 때리면서까지 한글은 떼고 초등학교 입학을 시켰다.


첫째 때 그 고생을 했기에, 둘째는 일 년 정도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발음에 문제가 있는 아이에게 도무지 한글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볼펜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하면 될 거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말씀만 믿고 있었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그동안 마냥 귀엽게 혀 짧은 아기 발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우리나라라는 발음을 우이나아로 발음하는 아이에게 무슨 수로 ㄹ을 가르친단 말인가?


한글이 세종대왕님의 은혜로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쉬운 언어인 줄만 알았는데 둘째한테는 엄청나게 어려운 언어였다.


한 달을 씨름하며 가르쳐 보려고 애쓰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주변에 물어보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언어치료센터를 찾아갔다.


언어치료센터에 가면 우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테스트를 보는데 ㄹ, ㅅ 발음이 안 되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혀가 짧은 편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잘못된 발음 습관을 내버려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문제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언어가 유아의 발달단계에 있어서 가장 나중에 발달하는 부분이라서 발음이 안 되는 아이 중에 더러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능을 포함한 종합검사도 따로 받았다.


다행히 청력도 정상이었고 지능도 좋은 편이었다.


발음교정수업을 받기 전부터 예정 되어있던 아데노이드와 편도선 수술에 설소대도 추가하였다.


꼭 수술해서 발음교정을 해야 할 만큼 짧은 혀는 아니었지만, 이왕이면 부족함 없는 조건에서 수업을 받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 간 언어치료센터는 광명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는데 ㅅ을 해결했을 때쯤, 자꾸만 발음교정과 상관없는 학습 능력을 높여준다는 추가 교육을 권유하기에 부담스러워서 관뒀다.


ㄹ이 계속 안 되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발음교정 비용도 비쌌기에 추가로 뭘 더 배우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간 언어치료센터는 광명에서 가장 발음교정을 잘하신다는 선생님이 있다는 곳이었는데, 그 선생님께 배우기 위한 추가 요금이 있었지만, 꾸준히 수업을 받고 ㄹ을 해결하게 되었다.


“엄마, 우리 다 싸웠어. 서로 오해도 풀었어. 이제 나와도 돼.”


첫째가 방문을 열고 나에게 말한다.


내가 둘이 싸우느라 피해 있었던 걸 알고 있었나 보다.


형제끼리 이렇게나 오랫동안 말싸움을 한다는 게 속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둘 다 어디 가서 말 못 하지는 않겠다 싶어서 안심이다.


둘째 발음 교정하기 전에는 잘 울고 말없이 소심한 성격이 타고난 성격인 줄로 알았다.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제 성격이 눌려있었던 걸 몰랐던 과거가 미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춘기라고 꼬박꼬박 말대꾸해서 엄마 속을 뒤집어 놓는 지금이 감사할 일이다.


그래. 나는 너를 바보 아닌 반항아로 만들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나 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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